무지개 다리 너머
어느 새 열흘이 흘렀다. 그 사이 요즘 연애 하냐는 연락도 종종 받았다.
연애? 아니..
아니긴, 카톡 프로필에 하트가 가득하던데.
...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일일이 설명하거나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프로필에 꾸며 놓은 설정을 다 지울까도 싶었다. 그치만 너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 이렇게 큰 걸 어쩌겠어. 보고픈 마음이 호수만하면 눈을 감고 생각할 거고, 49일 간은 너를 위해 기도할 건데.
지난 한 주는 신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 마냥, 몸은 내 몸 같지 않았고 마음도 내 마음 같지 못했다. 눈물샘이 조금만 자극 받아도 머리가 지끈거렸고 호르몬까지 가세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런 와중에 바쁘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마음은 오고 갈 곳 없이 떠돌았다.
쉽지 않았지만 성장통을 겪고 나니 한 뼘 깊어진 것 같았다. 스스로를 보며 미소 지을 즈음, 네 생각이 많이 났다. 잘 지낼까? 네게 쓴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다. 몸이 일상으로 돌아왔기에 마음도 그러리라 넘겨 짚었는데, 아직은 더 아물어야 할 것 같다.
순돌아, 내게 처음으로 가슴으로 낳는 사랑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순돌아, 바쁘게 흘러가는 삶 가운데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어 고마워. 순돌아, 우리 아빠를 보호해주고 떠나려 한 네 따스한 마음이 고마워. 순돌아, 우리 엄마에게 예순 평생 처음으로 쓰다듬어 본 생명이 되어주어 고마워. 순돌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너를 많이 예뻐했던 우리 언니에게도 사랑을 전해줘서 고마워. 순돌아, 마지막 순간까지 네 눈에 우리집을 차곡차곡 담은 뒤에야 편히 눈 감아주어 고마워.
혼자 얼마나 아팠니? 어젯밤엔 차마 너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등을 보이고 주저 앉아서 미안해. 근데 오늘 아침엔, 너가 늘 그랬듯 배를 만져 달라고 애교를 피우고 있는 것같이 예쁘더라. 그런 네 모습을 한참을 눈에 담으면서 정성껏 쓰다듬어 보았어. 이 감촉만큼은 서로에게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
어젠 하늘도 구슬펐는지 비가 줄곧 내리더니 오늘은 너를 보내고 오니 딱 두 방울이 떨어졌단다. 혹시 네가 보낸거니? 가족들을 생각하는 착한 심성은 마지막까지 여전하구나.
아빠가 너는 보살이라고, 우리집에 부처님이 오신거라고 그랬는데 정말로 부처님 오신 날을 꼬박 보내고 가네. 우리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과 깨달음을 다 줬다고 생각했는지, 네 역할을 다하고 일찍이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지만 큰 축복으로 받아들이려고 해. 네가 갈 새로운 세상에서도 주변에 큰 사랑을 나누어주렴.
나중에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낯설지 않고 내게 진심으로 호의를 베푼다면, 그 인연은 아마도 너가 아닐까 싶어. 우리 그렇게 다시 만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안녕을 빌게.
사랑해 순돌아, 정말 많이.
달빛 밝은 5월의 어느 밤
190717 - 210520

작년 겨울, 난생 처음으로 동물병원에 가보았던 날 (아마 너에게도 처음이었겠지?), 우리가 한 가족임을 법적으로 등록하고 어찌나 설렜는지 모르겠다. 이와중에 아빠는, 보호자 정보에 내 이름과 연락처를 남긴 것에 내심 섭섭해 하시는 듯 했다 (귀여운 질투랄까).
"이제 네가 주인이니까 순돌이 밥 주는 것도, 산책도, 응가 치우는 것도 다 하면 되겠네? 하하하"
"언니가 한국 오면 순돌이 데려가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되니? 네가 보호자니까 알아봐~"
하지만 곧바로 코로나가 번지면서 언니는 한국에 오지 못했고, 그 사이 그는 다른 세상으로 갔다. 엄마는 내게 비보를 전하던 그 순간, 침착하게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들어가서 이를 신고하라고 말씀하셨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게 이럴 때도 쓰이는 거라면 애초에 이 권리를 가지지 말껄, 철 없는 생각을 했다. 신고를 하루 유보했다. 마치 나와의 약속처럼 그를 보내주고 부재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신고키로 했다.
이튿날 새벽, 부모님과 함께 영면을 빌어주고 오니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신고서에 작성해야 할 사항들이 여럿 있어서 조금 놀랐다.
"엄마, 이렇게 쓰면 되려나"
"응, 저건 이렇게 체크하는게 더 낫겠다"
나는 한껏 싱숭생숭한데, 엄마는 업무적으로 자주 보시는 일이라 그런지 꽤 담담한 느낌이었다.
"정말 신고 하시겠습니까?"
왜 자꾸 물어... 몇 번을 다시 들여다 보고는 눈을 질끈 감고 제출 버튼을 눌렀다. 나의 동물 등록현황에 들어가니 더 이상 아무 것도 뜨지 않았다. 뭐야...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거였다니. 등록번호 옆에 무슨 사유라도 비고로 남겨지는 줄 알았는데 마치 원래 백지였던 마냥 그 어느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꽤나 허망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허망함들에 크게 놀라지 말라고 미리 연습을 한거겠지?
그 날 저녁, 순돌이에게 선물할 꽃을 사왔다. 아빠가 순돌이는 참 복도 많다고 하셨다. 꽃내음 맡길 좋아하던 너니까, 올해 같이 산책한 날이 이틀이 전부였으니까, 이게 내가 너에게 직접 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네가 전해준 사랑


자주 보러갈게, 너도 이렇게 가끔씩 사랑 나누러 와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