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블로거 M님의 식물일지에 영감을 받아 쓰게 된 포스팅*
개강 2주차 주말.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모처럼 늘어지고 싶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정확히 2주 전에만 해도 영하 30도에 강풍 주의보가 내려 정말 오들오들 떨었는데 이번주에는 최저/최고 기온이 -2/12도를 유지하면서 봄 기운이 내내 감 돌고 있다.

작년 10월 달에 우리과 한국인 박사님이 다른 주로 이사를 가시면서 그 분이 기르던 식물 두 개를 입양 받아 태어나 처음으로 식집사가 되었다. 산세베리아랑 넝쿨 식물이라 비교적 기르기 쉬웠고, 같은 달에 학교에서 열린 TEDx 강연에서 식물 모종을 나눠줘서 세 개를 더 업어 왔다. 안타깝게도 그 중 하나는 나의 관리 부실로 시름시름 앓아 일찍 보내주었고 하나는 연구실에, 나머지 하나는 집에 두고 같이 길렀다.
강연에서 받아온 건 모종 화분에 담겨 있었어서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려고 줄곧 마음을 먹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그리고 마트에 가도 화분을 안 팔길래 작디 작은 큐브에서 키울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추수감사절 때, 하숙했던 N 박사님 댁에서 더 큰 모종 화분과 벌레 방지 토양을 좀 받아왔는데 귀차니즘으로 두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12월에 학회와 여행을 다니면서 산세베리아에는 물을 제대로 못 줘서 잘 자라던 녀석을 말려 죽일 뻔 했다.
다행히 산세베리아는 최근에 거실로 터전을 옮겨 룸메랑 같이 물을 자주 주면서 심폐소생술을 시켰더니 다시 건강한 줄기를 가지게 되었다. 안도의 숨을 쉬던 차에 마침 오늘 날도 좋겠다, 뭔가 묵은 숙제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두 달을 방치해둔 흙과 화분을 들고 베란다로 나왔다.
Golden pothos도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한 새싹은 따다가 수중에서 길렀는데 뿌리가 많이 내려서 더이상 물에서만 키우긴 어려울 것 같았다. 흙에서 양분 먹고 자랄 수 있게 조금 더 큰 화분에 옮겨줬고 대신 이 녀석이 자라던 수중 재배 화분에는 또 다른 새싹들을 따다가 담아주었다.




싱그러운 녹색빛이 기분을 참 좋게 만든다. 새로운 화분에서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
오늘 튜터랑 화분 분갈이 얘기를 했는데, 나보고 hot hand 냐며 hot hand는 모든 것을 죽이고 cold hand는 식물들을 번성시킨다는데 튜터가 나는 그냥 slow hand인 것 같다고 그랬다. 맞다. 굉장히 느리다 나는. 식물들을 한동안 방치해서 미안했는데 앞으로는 사랑으로 잘 키워봐야지.

사실 왼쪽 넝쿨식물은 룸메가 한 2-3주 전쯤 본인이 가지고 있는 큰 화분에 조만간 분갈이를 하겠다고 했었는데, 개강도 하고 한창 바빠 보여서 룸메가 외출해 있는 동안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조금 큰 starter cube에 옮겨 담았다. 사실 룸메의 화분에는 흙도 가득 담겨 있었는데 그 흙을 파낼 모종삽도 없었고 그냥 내 cube와 흙을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아서 룸메것은 향후 다른 식물을 위해 남겨두기로 생각했다.
외출 후 돌아온 룸메에게 몇 몇 친구들을 분갈이 해줬다고 하니 내가 우리의 agreement를 어겨 혼란스러운 기색을 표하였다. 내 나름대로는 상대가 없을 때 상대의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배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화분을 사용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짐작했는데 룸메에겐 그렇지 않았나보다..ㅜ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누군가와 동거를 해나가는 건, 서툴게 배워가야 할 점이 참 많은 부분인 듯 하다. 그리고 의사소통에서 미숙한 부분들이 생기면 그게 얼마나 사소한 일이든 간에 내 일상을 괴롭히고 마음을 힘들게 한다. 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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