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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새벽 생각모음 - 연구자?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 걸까

by peregrina_ 2021.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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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가오는 수요일, 중간고사 대비 조교 수업을 앞두고 있다. 밀린 강의들을 복습하고 수업 준비에 한창 열을 올린 주말을 보냈다. 비록 한 시간짜리 수업이지만 학부생들에게 알짜배기로 도움이 되고픈 마음과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동력이 된 것 같다. 발표 같은 것에 있어서는 철두철미 준비해야만 성에 차는 성격 탓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래도 역시 배워서 남줘야 나한테 남는다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 많이 배운다. 친구 J가 조교를 하다 보면 연구적으로도 실력이 는다고 하던데 그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조교 일 > 연구'와 같은 주객전도 상황은 지양하자.

2. 과제 채점도 한 번에 몰리고 지난주에 생일과 시험, 학회 발표자료 제출 등등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금새 여름이 가고 쌀쌀한 가을이 왔다. 다음주엔 최저 기온이 2도 언저리라는데 가을 없이 겨울이 다가올 모양이다. 마침 오늘 패딩을 주문했는데 시의적절 했다 싶으면서도 새삼 날씨가 이래도 되나 싶다. 내 연구는 아직 폭염에 머물러 있는데.. 여름 내에 이 연구의 끝을 보고 싶다는 패기 어린 (쪼꼬미 석사생의) 욕심은 귀엽게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3. 마침 지난주에 미리 제출했던 학회 포스터 녹화본이 공개 됐다고 한다. 같은 세션에 참가한 동기가 내 발표를 잘 들었다고 인사를 건넸는데 민망함에 '으악!' 했다. 온라인 학회인데도 처음이라 상당히 수줍다..ㅎ 지금까지 나온 결과들 정리해서 숏 페이퍼를 내고 다음 연구로 넘어가고 싶은데(교수님과도 합의 된 부분) 아직 교수님께서는 어딘가 긁어지지 않은 가려움이 있으신 것 같다. 사실 나도 '이걸로 충분할까' 싶은 생각이 계속 맴돌긴 한다. 공부를 더 해야할텐데... (다음 말이 무엇일지 예상 되지만 그 이상의 자책은 하지 말자) 아무튼 이번 겨울에는 일단락을 짓고 싶다. 밀려있는 연구 주제들을 보면서도 조금씩 '석사 졸업 하기 전에 마쳐야 할텐데' 하는 조급함이 들고 있다. 조급함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을 것은 알고 있지만 그냥, 시작과 끝이 늦어질수록 나의 나태함으로 괜한 화살이 가진 않을지 우려가 되는 건 사실이다.

4. 유학 중인 친구 Y와 오랜 만에 연구자의 마음 가짐에 대해 목소리를 나누었다. Y가 말하기를 일에는 기쁨도 슬픔도 없다고 했다. 내 감정선에 흔들리지 않고 그저 글을 읽고 공부하는 루틴을 이어가는 하루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하는 이 일은 학계의 대가들이 심고 가꿔 놓은 나무에 나뭇잎을 하나씩 가지 사이사이에 붙이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이 과수원에 사과 나무도 심고, 포도 나무도 심고, 오렌지 나무도 심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살아가다 보니 세상과 조금씩 타협을 하게 되더라. 아니 타협이랄 것도 없다. 그냥 내가 이 세상을 이해한만큼 수용하다 보니 내가 가꿀 수 있을 것 같은 수종이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겨우 선택한 나무에 나뭇잎을 하나하나 피우는 일이라.. 이것이 비단 학계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숲을 보려면 숲에서 나와야 하는 것도 필요한 반면, 울창한 숲을 만들기 위해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잘 기르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으음. 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내 기질에 맞는 삶은 무엇인가... 해를 거듭해도 답이 없는 질문 같다.

5. 최소한 이 삶을,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가까운 곳에 있는 삶이면 좋겠다. 지나치게 대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오늘 지금 이 곳에서의 행복을 미루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럼 그 행복이란게 뭔데? 사실 심리학에서 말하기로는 현대사회에서의 행복은 그 본질과 조금 동 떨어져 있다고 한다. 본래 행복의 의미는 '우연히 찾아온 복'이지만 이건 과거 문명사회 이전에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에 근래엔 '쾌족'이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한다. 쾌족은 '본인의 삶에 만족하여 기분이 상쾌하다'라는 뜻이다. 또 유사하게는 '무언가에 대한 관심으로 머릿속이 가득찬 상태'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게 곧 사랑 아닌가?... 아무튼 행복은 '내 안에 열정을 가득 쏟을 만한 관심사가 있는 상태'로 바꿔 말할 수 있는 셈이다.

인간은 희노애락을 향유하며 살 수 밖에 없는지라 매사에 행복'만' 할 수는 없다. 불안이나 우울도 평생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 다양한 감정들 안에서 만족과 열정이 공존하는 삶이라... 음. 요즘은 행복의 기저가 될 수 있는 가치들이 서로 저울 위에서 자유 분방하게 시소를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혼동스럽긴 해도 그렇다 해서 두려울 것도 없다. 이전처럼 갈팡질팡 큰 흔들림도 그리 없다(아직까진). 그냥 나를 더 가만 들여다 보고 탐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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