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크게 다가왔던 이 슬픔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그릇을 넓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면, 이 충격을 흡수할 완충재가 내 안에 더 많아지리라 믿었다.
지난 사흘 간, 뺨을 따라 흐른 눈물 자국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숨을 끅끅 내쉬며 서럽게 울기도 했고, 울다 지쳐 넋을 놓고 있다가도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눈물샘은 내 것이 아닌 냥, 내가 컨트롤 하기 어려웠다.
아, 더 이상은 이렇게 지내선 안 될 것 같았다. 혼자 깊음에 잠기지 않기 위해서 어젯밤 지장경을 꺼내 1독을 했다. 너를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더 솔직히는 혼자 잠들기가 겁이 났던 것이 더 컸다.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입으로 외니 마음이 안정됐다. 아빠랑 장작불을 피면서 나누었던 대화들도 책 속에 담겨 있었다.
49일간, 너를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
점심녘 일어나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두 분 다 안 받으시니 약간의 걱정이 되었다. 마당에 설치 된 카메라를 봐야겠다 싶어 어플을 켜보니 두 분이 열심히 화단을 가꾸고 계셨다. 마음이 놓였다. 아빠가 부엌에서 나와 평상에 앉으실 즈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나리~"
"아빠~ 약주 한 잔 드시려고?~"
"어잇?? 카메라 보고 있었니~?"
"아니 엄마아빠 다 전화를 안 받길래 뭐하나 하고 방금 켜봤어요~"
"이제 너가 보고 있어서 마당에선 아무것도 못하겠네 허허"
벌써 1년 반이 다 돼간다. 작년 설,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답시고 며칠 간 집을 비워야 했는데 혼자 있을 순돌이가 참 난감했다. 며칠 분의 사료와 간식을 다 준비하고 물도 얼지 않게끔 이곳저곳 열선 처리를 해두었지만 잘 지내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집 곳곳에 카메라를 들여놓았다. 앞마당과 아래, 윗마당이 모두 보이도록.
여행을 다녀온 후로는 난 그 카메라를 도통 확인해 볼 생각도, 그 존재도 종종 잊고 있었다. 순돌이의 임종일을 제외하고는..
이제는 종종 열어볼 것 같다. 화단에 꽃은 잘 자라는지, 텃밭에 상추는 쑥쑥 크는지, 부모님은 퇴근 후 어떻게 쉬고 계시는지, 별 일은 없는지...
그렇게 나는 늦은 점심을 먹으며 부모님과 모종의 (일방향적인) 영상 통화를 했다.
"나리야 지금 뭐 먹고 있나? 엄청 맛있게 먹는 소리가 들리네"
"그래?? 나~ 그냥 순두부찌개 먹고 있지. 맛있게 들리나"
"어~ 그래 들리네, 밥 꼭꼭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엉 그래야지"
그치만 밥을 한 공기를 채 먹지 못하고 반을 남겼다.
쨍그랑 -
"헉..."
"나리야 뭐 떨어뜨렸나?"
"어... 밥이 좀 남아서 냉장고에 넣으려 그랬는데 다 깨졌네..."
"액땜했네~ 깨져야 또 좋은 것도 사고 하지. 조심해서 버려"
"그릇보다도 남은 밥이 아깝다...ㅠㅠ"
"저기 그 스님이었으면 아마 이렇게 하셨을 것 같네- "
"물에 헹궈서 드셨을 거라구요?"
"그래 (농담)"
"저는 스님 될 상은 아닌가봐요 아빠ㅋㅋㅋ"
"그러고보니 저온창고에 네가 쏟은 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 고민이네"
"앗ㅋㅋㅋ 그거 아직... 그대로 있어요...? 나 많이 주워 담았는데...;; "
"그래 오죽 많이 쏟아야지"
"(머쓱..)"
그 때도 오늘처럼 손이 미끄러져 열심히 푼 쌀을 바닥에 엎지른 것... 당분간은 물건 쥘 때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라고 하고 길 걷다가 핸드폰을 또 떨어뜨렸다 하하.)
통화를 마치고 한 참 뒤, 엄마로부터 안경이 반으로 부러진 사진을 받았다.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그냥 잡았을 뿐인데 붙일 수도 없게 반토막이 났다.
"엄마.. 우리 오늘 왜 이러지? 액땜 제대로 하네"
"그러게 정말"
우리집에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려나 보다.
틈틈이 지장경 읽고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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