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그가 떠난 직후 며칠은 부정과 우울의 단계를 길게 느꼈지만, 그래도 매일 밤 책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꽤 빠르게 수용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어제 아빠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평온한 일요일 오후, 일상을 정비 하던 중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순돌이 산소 사진과 함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의미심장한 메세지가 있었다. 사진 속에는 그가 누워있을 자리에 큰 바스켓이 씌워져 있었고, 땅에 묻어 세워 뒀던 장난감 하나가 사라져있었다. 직감이 좋지 않았다.
"사진 뭐예요 아빠"
잠시금 아빠와 연락이 닿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혼자 벌초를 하러 가신 지라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계셨다. 사진을 보내드리니, 전날 비가 폭우 같이 쏟아졌다며 아마 흙이 채 다져지지 않아서 아빠가 바스켓을 덮어놓은 것 아닐까 생각하셨다. 그래, 비가 많이 왔다니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아빠가 그런 일로 이렇게 연락하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아빠께 답장이 왔다.
설마 했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 미친. 말도 안돼. 이건 그도 우리도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내 가슴도 함께 너덜너덜 파헤쳐졌다. 부정의 단계를 지나 분노가 차 올랐다. 멀리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으니 누구라도 탓하고 화를 내고 싶었다. 내가 집에 있었다면 매일 산에 올라가봤을텐데, 원망의 화살이 괜히 부모님께 돌아가려 했다. 근데 내가 있었다한들 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이 상황을 가장 먼저 마주했다면? 그러자 아빠의 입장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떠난 날도 아빠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귀가를 했다곤 하셨지만, 마당 저 멀리서부터 선명히 생사가 분간됐던 순간과, 목줄을 풀고 팔다리를 펴주던 시간을 보낸 뒤 아빤 몇 시간을 우셨다. 그런데 이번엔 마음의 준비는 무슨. 여느 때처럼 풀 깎으러 가시며 "순돌아~ 잘 있었니~" 하고 다정하게 이름 부르셨을게 뻔한데... 그 충격을 마주하셨을 상황을 떠올리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빠, 많이 놀라셨겠어요... 저 지장경 매일 읽고 있으니까 순돌이 영혼은 좋은 곳으로 가고 있을거에요..
그렇지? 풀 좀 깎으러 갔다가 그 모습을 ~ 눈물이 난다.
이 녀석, 우리가 아무리 부처라고 불렀다 해도 그렇지. 이 현생에서 보시란 보시는 다 하고 떠나려는 속셈이니. 내 그릇이 아직 넓지 못해서, 오늘도 땅굴을 파러 오는 그 자식들은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늘도 원통한지 어젠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천둥번개도 무섭게 쳤단다. 이제는 우리 가족 그만 울게 해주라...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영위하려는 내 모습이 가끔은 거짓 같고 죄스럽단 말이야...
그래도, 화병이랑 땅에 심어준 꽃만큼은 예쁘게 보호해줬네, 고마워 순돌아.
더 잘 지켜줄게 아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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