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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망막에 구멍이요? 망막박리 레이저 치료 @신촌 세브란스

by peregrina_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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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년 간 안경을 껴오면서 어려서부터 했던 다짐이 있다. “눈에는 손 안댈거야!”

그 이유는 바로 우주여행 때문. ㅋㅋㅋㅋ

어린 시절엔 내 한 평생에 우주 여행을 가는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어왔다. (물론 지금도 유효한 생각이지만 이제는 기회가 생기더라도 선뜻 떠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비행기 마저 요즘은 이착륙 시 상당히 겁 먹는 나..) 그리고 우주선을 타려면 안압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시력교정술을 받으면 결격사유가 된다는 말을 듣고는 눈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언니가, 시력교정술을 최초로 집도한 교수님께 수술을 받고는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하는게 아닌가. 조종사를 준비하던 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수술을 받고는 똑같은 말을 하길래 이게 대체 무엇인고 싶었다. ‘정작 안과 의사는 눈수술 안한다’는 말을 신봉하던 나로서는 가까운 사람들의 ‘그 신세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생각을 누가 엿보기라도 했을까? 그 후로 인터넷에 온통 안과 광고가 난무했다. 검사나 한 번 받아볼까 싶어서 상담을 신청했고 그렇게 첫 안과 검진을 받았다. 사실 첫 병원에서는 동공을 확장시키는 산동제를 넣지 않아 별다른 특이사항은 알 수 없었다. 몇 차례 압구정 일대를 순회하던 차,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환을 발견했다.


망막에 구멍이 났네요.
레이저로 고정해야 주변으로 확장되지 않습니다.



이름하야 (열공)망막박리. 방치할 경우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질환이라고 한다. 다행히 나는 망막 주변부에 작은 열공들이 있는 초기 상태라 레이저술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치만 망막은 재생되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구멍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주변으로의 확장을 막는 것일 뿐.

안과를 한 다섯 군데 정도를 다녔는데 딱 한 곳에서만 망막 이상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레이저술을 바로 받아야 할지 아닌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이니까 함부로 시술을 결정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세브란스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예전에 세브란스에서 정형외과 외래를 다닐 땐 대기만 두 달을 했는데 안과는 다행히 다음 날 바로 진료가 가능했다.


세브란스 안과병원. 학교에 이런 상급종합병원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코로나19 문진 완료 스티커


내 증상이야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엄청난 인파와 대학병원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 들었다. 이런 병동 분위기는 올 때 마다 적응이 안된다. 진짜 큰 질환이 있어서 왔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안과 초진자를 위한 검진 가이드. 퀘스트를 하나씩 깰 때마다 사인이나 시간 등이 기록된다.


일단 검진 타임라인만 봐도 기가 빨린다. 영수증처럼 길게 뽑힌 종이가 초진자가 밟아야 할 코스를 상세히 설명해놓은 것이다. 저걸 들고 번호표로 대변되는 내 신분과 함께 인간 탁구공이 되어 원무과와 진료실들을 튕겨 다닌다. 주치의 교수님을 뵙기까지 참 많은 관문을 거치는 과정에서, 나 역시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안과 검사 항목들


망막 검사실 앞에서 이 표를 받고, 처음에는 여기 써있는 모든 검사를 다 받는건가 했다. 그래서 ‘오 역시 대학병원이야!’ 하고 감탄했는데 나중에 검사실을 나올 때에야 망막안저촬영만 진행한다는 것을 싸인을 통해 알았다. 검사 하나 받는데 넘 비싸 엉엉ㅠ


기존 결과와 마찬가지로 오른쪽 망막에 여러 열공들이 관찰됐다. 원인을 여쭤보니 근시 때문에 안구가 커져서(?) 생긴거라고 한다. ㅠ_ㅠ 언제 생긴건진 모르겠지만 그간 아무런 증상은 없었다. (하늘에 실이 떠다니는 것 같은 비문증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면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나는 치료가 당장 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레이저 망막장벽술을 받아야 추가적인 시력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열에 두 세명은 망막 자체가 약해져서 시술 후에도 박리가 일어난단다. 그래서 두 달 후에 다시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당일 시술을 결정했다.



으윽. 솔직히 아팠다.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린감이 남아있다. 마취도 하고 시술 자체는 30초도 안 걸렸는데 열공 주변으로 레이저가 쏘일 때마다 ‘윽!’ ‘윽!’ 하고 입을 앙 다물었다. 교수님이 따발총으로 내 눈을 사격하시는 것 같았다. 그만 쏴주세요ㅠㅠ 아니면 천천히라도 쏴주세요ㅠㅠ

다 끝나고야 “너무 아파요..” 하니까 “레이저는 원래 좀 아파요 ^^” 라고 하심.. 아뉘! 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미리 알려주셨음 좋잖아요.. 생각해보니 피부 레이저 받을 때도 타는 듯한 뜨거움이 있었는데 눈은 오죽할까 싶네. 이래서 라식 라섹하고 나면 한 동안 눈이 시리다고 하는구나…

아무튼 레이저술은 별다른 관리나 주의사항은 없었다. 그냥 눈을 비비는 행동이나 안구에 직접적인 충격만 가하지 않도록 유의하면 되는 정도? 물론 이건 눈 건강을 위해선 평상시에도 당연히 신경써야 할 기본수칙이지만!



혼이 쭉 빠지는 하루였다.
어릴 때 머리 꼬맨 이후로는 마취하고 시술이라 부를만한 건 처음 해서 그런가, 몸이 꽤 긴장했던 것 같다.

아무쪼록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더욱더 신경써서 관리를 하자. 괜히 정기검진 받으라는게 아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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