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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무지개

by peregrina_ 2021.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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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 연속 글감으로 오른 무지개.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결에서 다룰 예정이다.



처음으로 곡 선물을 받아 보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작품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내게 '작곡'에 대한 첫 인상은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미디어봉사동아리를 하면서 네이버 해피빈에 올릴 모금 영상을 제작하고 있었다. 작품 시나리오 기획부터 촬영, 편집, 작곡까지 모든 요소가 동아리원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나의 역할은 피후원자의 스토리를 다각도로 렌즈에 녹여온 뒤 꼼꼼히 타임라인을 마킹해서 편집자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떨리는 첫 촬영 당시, 현장을 방문해서는 렌즈 속에 편집되어 보이는 세상과 내 눈으로 바라보는 현실은 온도차가 꽤 있단 걸 느꼈다. 그래서 카메라에 시선을 잘 담아가야 하는 임무도 막중하게 다가왔지만, 이걸 어떻게 가공해서 세상에 내보이는지도 상당히 궁금했다. 며칠 후 편집본을 볼 수 있었는데 배경음악 첫 소절을 들으면서 부터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작품의 화룡점정은 음악에 있는 것일까. 그 때 처음으로 음악이 주는 진정성을 가슴으로 느꼈다. 작곡과 선배는 어떻게 이 사연의 감정선에 딱 맞는 근사한 곡을 만들었을까 매일 같이 감탄했다. 한 동안은 그 곡에만 젖어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 경험을 계기로 '작곡' 작품을 보면 그 이면의 의미를 한 번 더 곱씹어보게 되었다. 작곡은 어느 대상이나 시상을 생각하면서 내 안의 감정을 표현하는 정말 부드럽고 아름다운 작업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 대상이 내가 되었다. 그것도 나의 소중한 친구로부터.

학교냐고 물어오는 그의 연락에, 오랜 만에 통화를 하고 싶은걸까 싶어서 내 귀는 언제나 열려있다고 함께 답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지금 2015년에 머무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연히도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2015년이지. 그는 당시 작곡을 해두고는 2021년이 되어서야 먼지 쌓인 책장을 털어내면서 완성한 곡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다시 닿게 된 곡.
LP를 꺼내서 괜찮은 축음기에 돌린 곡.

누구의 것이 될지 참 궁금했던 곡.


그 곡이 쌍무지개가 되어 나의 품으로 왔다.
그에게서 무지개가 사라지는데도 아쉽지 않은 그런 느낌으로 나에게 왔다.


무지개란, 우리 마음 속에서 늘 손을 뻗어 한 번 잡아 보고 싶은 존재. 그가 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려가 만져 보고 싶은 존재이지 않을까. 저마다 무지개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그에게서 떠나 나에게 온 이 무지개는, 그에게 하나의 작고도 큰 결심과 같은 아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선물이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그가 이 곡을 처음 쓰던 2015년에도 비가 왔던 것 같다고 한다. 지난 몇 주간은 비 오는 날이 내게 참 아팠는데 오늘은 이 비가 잔잔한 위로가 되는 하루이다. 나의 무지개도 하늘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나 보다.


이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뜰까.

사진은 네 블로그에서 :)


친히 내 이름까지 담아준 곡, 고마워
https://soundcloud.com/inhwanko/rainbow

 

무지개 (Rainbow)

나리

soundclou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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