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눈치가 빠른 편이다.
대화의 맥락을 캐치하는 류의 상황 보다도 사람과 공간에서 풍겨오는 아우라를 쉽게 감지하는 편이다. 민감성이 매우 높달까. 초등학생 때부터도 단짝 친구의 뒷모습만 보고도 기분을 알아차렸다. '아 지금 약간 뾰루퉁해 있구나'
예전에 선생님이랑도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마치 생존 본능처럼 점점 자라면서 더듬이가 이런 방향으로 발달했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변인에게 둔한 것 보다야 섬세한게 좋은 면들이 더 많다고는 생각하지만 가끔은 적당히 둔감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표정, 안색, 행동들이 내 레이더에 바로 포착되다 보니 여력이 되는 한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행동하곤 한다. 자연히 '나'보다 '남'을 더 많이 신경쓸 수 밖에 없고 이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아쉽게도 이 레이더의 통제 권한이 썩 내 자신에게 있는 편은 아니라 가끔은 스스로도 버거운 순간들이 있다.
우리는 좋은 일, 기쁜 상황이 생기면 과도한 자랑을 조심할지언정 좋은 일을 숨기기 보다는 보통 주변 사람들과 나눈다. 하지만 반대 경우엔 사회 생활을 하면서 굳이 드러내봤다 득이 될게 없다고 생각해서 혹은 나약한 모습을 틀키고 싶지 않아서 마음 저변에 덮어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레이더는 이 경우를 잘 포착하는 편이고..
다만 상대가 풍기는 어두운 아우라를 알아차릴 때마다 내게도 그 감정이 고스란이 전해진다. 그럼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순간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이다. 가려진 햇살이 퍽- 속상하기도 하고 때론 그 마음이 증폭돼 애증의 감정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애'는 상대를 향하지만 '증'은 그 때 그 때 다른 비율로 양방향 화살이 되어 날아간다.
물론, 내가 가진 그릇이 작거나 거의 꽉 찼을 때는 이 아우라를 의식적으로 모른채 하기도 한다. 슬프지만 그런 상황에선 상대에게 향할 '애'조차 담아둘 공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 와중에 '증'은 좁은 공간이라도 비집고 엉덩이를 눌러 앉고 만다. 거짓말이나 포커페이스를 못하는 나는 이 감정들이 고스란히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모른채 하고 애써 괜찮은 척 해도 살결에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감정카드를 구비하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든다. 민감성이 높은 만큼, 이 카드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내 감정선들을 섬세하게 분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메타인지를 키우면 전보단 조금 더 둥근 표현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자갈밭 곳곳에 거친 조약돌이 끼어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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