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입추라서 그런가, 밤공기가 제법 선선 해졌다. 요 근래 학교를 몇 번 오간 것 말고는 도통 외출을 하지 않아서 저녁에도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지 몰랐다. 어제밤에서야 만 이틀 만에 문 밖을 나가기도 했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하고 둘러대기 좋은 날의 연속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것도 특별히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근이완제랑 소염진통제를 먹으면서 운동도 쉬고 있어서 움직이는 거라곤 간간이 요리하는게 전부다. 입에 거미줄 칠만큼 무료하기 짝이 없네. 차가 있었으면 드라이브 정도는 갔겠는데..
그래도 이 싱거운 시간들을 올림픽 덕에 잘 넘겨내고 있는 것 같다. 올림픽 개회 때까지도 마음 속으로는 개최를 반대했고 단 한 경기도 생방송을 챙겨보지 못했다. 뒤늦게 경기를 몰아 보지만 결과를 알고 봐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들이 많았다. 그리곤 싸이월드 파도타기 하듯 도쿄에서 시작한 올림픽이 평창, 소치 등을 거쳐 서울까지 갔다. 중간에 2002년 시절 대전도 빼놓지 않고 다녀왔다. 현대사 관점에서 88 올림픽을 조명하고 민족성을 다루는 영상을 보면서 애족심의 눈물까지 흘릴 줄이야.
유튜브가 내 감동 포인트를 잘도 파악했는지 이후 내한 콘서트 떼창 모음집 영상을 추천해줬다. 처음 내한 한 가수들이 떼창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에 놀라 말로 표현 못할 감동의 눈빛을 보였는데, 그 모습에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괜시리 매년 빠짐없이 갔던 아카라카가 그리워지고 나에게도 아이유도 처음이었던 아카라카에서 '좋은 날' 떼창에 함박 웃음을 터뜨린 아이유도 생각났다. 매해 아티스트들이 우리의 호응에 감동 받아하고 모든 가수들이 오고 싶은 대학 축제 1위라는 이야기가 떠올라서 복합적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다.
언제 다시 그런 콘서트의 열기를 느껴볼 수 있을까, 몇 만 명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우리 일상에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올림픽도 평창 때 빙상 경기 하나는 보러 가볼걸, 뒤 늦은 아쉬움도 든다. (스키 경기는 경기장 도착 하자마자 강풍으로 취소 됨..)
매 순간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즐기면서 살기엔 내겐 코로나라는 장벽이 너무 드높은 날들이다. 사람과 공간, 물건에도 정이 많은 나는 이 비대면 사회 만큼은 도무지 정을 붙일 수가 없네.. 오랜 만에 당근에서 물건을 사고, 나눔도 하면서 짧은 순간에 나마 정을 나눠 보았다. 근래 가장 미소 지어 보았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 블루의 늦바람이 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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