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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마음 읽기

[마음 일지] 21/08/03(화) - 자문자답 산책

by peregrina_ 202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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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오늘 새벽엔 '이러다 나도 모르게 죽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위협감을 느꼈다. 근래 수면 패턴도 뒤엉키고 잠에 들 때 가슴이 짓눌리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오늘 최고조에 달했다. 기분 탓인가 하고 넘기기엔 점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애써 잠을 청하려 해도 호흡곤란의 압박이 심해졌다. 시간은 새벽 5시, '숨을 쉬기 위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동쪽엔 푸르스름 동이 트고 있었지만 대로변을 향하는 서쪽은 아직 서걱서걱한 어둠이 짙었다. 아직 찬 공기가 자욱하게 깔려있어 등골이 서늘해졌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정신이 확 드는 순간이었다. 마침 모퉁이에서 야금야금 걸어오는 고양이를 마주쳐 내적 비명에 닭살까지 돋았다. 겁이 원체 많아, 핸드폰 키패드에 '112'를 눌러놓고 대로변에 닿을 때까지 종종 걸음을 했다.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버스에 몸을 실은 사람들, 운동하는 분들, 분주한 택시들을 보면서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다. 지금 만큼은 우리가 같은 시간과 공간을 스치고 있지만 결코 같은 하루는 아니구나. 저 중엔 나처럼 간밤에 잠 한 숨 못 들고 나온 사람도 있겠지. 행복한 밤을 보낸 자도, 가슴 아픈 밤을 보낸 자도 하나 되는 이 순간이 존재하구나.

새소리, 벌레소리를 흘려 들으며 횡단보도가 수 차례 파란불로 바뀌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점점 주위가 환해졌다. 이제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을 것 같아 6시 무렵 집에 돌아왔다. 바깥 공기를 잘 쐬고도 침대에서 만큼은 여전히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괴로운 마음에 여러 의료기관 사이트에서 몇 가지 검사을 해보니 임상 수준의 심한 우울 단계라고 했다. 기준점보다 내 점수가 월등히 높았다. 그렇구나... 우선 잘 자고 내일 생각해야겠다 싶어 호흡을 가다듬고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오후 3시. 오늘까지 연구실에 휴가를 냈지만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냥 출근을 할 생각이었다. 근데 시간도 시간이고, 일에 집중할 컨디션이 아니어서 예정대로 쉬기로 했다. 고심고심 끝에 선생님께도 도움을 청했다.

딱히 쉬는 마음은 들지 않고 다가오는 스터디 발제도 더이상 준비를 미룰 수 없어서 해질녘에 학교에 갔다. 늦은 시간인데도 선배들이랑 교수님이 삼삼오오 모여 디스커션을 하고 있었고 그 열기에 에너지를 얻었다. 오랜 만에 보니 너무 반갑기도 했고 금새 마음이 한층 개였다. 발제 준비도 새하얀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잠시 막막했지만 '대충 해보자'는 마인드로 금새 뚝딱뚝딱 80% 정도를 완성했다. 유튜브에서 양브로 선생님들도 완벽주의 양떼들에게 미루지 말고 대충 시작해보길 권하셨는데 효과가 좋았다. 숙제 하나를 거진 끝낸 덕에 기분이 조금 더 나아졌다.

때마침 당근 거래도 속전속결로 성사됐다.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 김에 산책할 겸 경의선 숲길을 한 바퀴 돌았다. 홍제천은 가끔 거대한 고가도로와 넓직한 산책로에 위압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요즘 나에겐 숲길 정도의 아늑함이 딱 좋다. 혼자지만 다같이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적당한 밀도감이 큰 위로가 된다. 은둔형 외톨이 마냥 보낸 지난 나흘 간은 고독에 힘겨워 하면서도 그만큼 아무도 찾고 싶지 않았는데 이럴 때 참 걷기 좋은 공원이다.

모처럼 사람 다운 행색을 갖춰 나섰으니, 내가 내 말동무가 되어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실 연구실에 에어팟을 두고 와서 본의 아니게 아무 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아!!' 하고 한탄이 튀어 나왔지만 이내 주변과 내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핸드폰만 들고 평소처럼 공덕 방향으로 걷다가 매번 같은 길은 재미없지, 하고 가좌역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며칠 간 그렇다할 이유도 모른 채, 계속 버거워지는 방향으로만 마음이 증폭돼서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마주할 여력이 없었다. 오늘에서야 무슨 일이었니, 하고 나에게 침착하게 물어보았다.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답을 하는게 망설여져서가 아니라 무엇이 답인지 혼란스러웠다. 다시 물었다. 그럼 내면에서 채워지지 못한 욕구가 있었어? 질문이 한 단계 구체화 되니 답하기도 수월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나를 잘 가꾸기 위해서 안정감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내게 안정감을 주는 요인 두 가지가 슬금슬금 흔들리더니 우연히도 같은 날 무너졌다. 애증의 상실이었다. 알게 모르게 마음을 소분해서 기대고 있었다가 순식간에 홀로서기를 해야했다. 인생은 원래 홀로서긴데 아직 마음 속엔 어린아이가 떼를 쓰곤 한다. 그래서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강한 다짐이 공중에 흩어진 마음들을 불안, 분노, 그리고 우울로 전이시키고 말았다.

이 깊음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남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내 안에서 안정감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인생을 살아가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쉽지 않다. 내 육체에 깃들어 살고 있는 영혼을 읽기란 더더욱 어렵다. 힘들지만 저항을 이겨내면서 이렇게 나를 알아갈 뿐이다. 꾸준히 공부 하면서 마음 근육, 생각 근육을 단단하게 길러야지.




+
오늘은 한결 낫다고 생각했는데 뒤척이다 새벽 4시가 넘으니 다시 심장이 느리게 뛰는 것 같다,, 편안히 잠을 잘 자고 싶다, 졸린데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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