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란 앎의 근원적인 욕구와 관계하는 철학적 인식과, 자신이 속한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아는 역사적 인식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을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피히테

문헌정보학과 송민 교수님의 우수연구자 특강을 들었다.
교수님은 올 7월에 PLOS ONE이라는 국제 저명 학술지에서 최다 인용 논문 상위 10%를 기록하고 올해 Expertscape 발표에서 Bibliometric 분야 세계 top 1% 연구자로 선정되실만큼 세계적인 연구자이시다.
순탄치만은 않았던 연구자 생활이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오니 이런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본인 소개를 하시며 처음 나눠주신 조언은 개인 홈페이지 관리를 꼭 할 것이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1) 자기 객관화와 동기부여를 위함 - 내가 스스로 내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그 히스토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함. 가령 난 5년 후에 이런 위치에 있으려고 하는데 현 주소는 이렇구나를 알기 위함.
2) 나의 연구를 소개하기 위함 - 다른 연구자로 하여금 내 성과나 관심 분야를 알릴 수 있어야 함.
계속해서 이어지는 교수님의 연구자로서의 발자취
나는 무엇을 할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고민이 많던 학부생 시절. 방황을 많이 하다가 4학년 때 유학을 결심. 좀더 기술적인 것을 배우고 싶어서 석사 때 전산학을 마이너로 들음. 당시 학점을 C, D 받기도 하면서 전산학 교수님께 '너는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다른 것을 하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음. 그리고 박사를 진학하고는 IMF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음. 그리고 담 하나를 두고 회사와 붙어있는 대학에 박사를 파트타임으로 진학. (당시 가족의 헌신도 있었음.) 박사 논문은 텍스트 마이닝으로 썼는데 그 당시는 거의 희귀한 분야였음. 지도교수님도 데이터 분석 관련 된 전공이셨어서 차라리 지도 교수를 바꾸라는 말도 들음. 그러다 교수님께 매주 텍스트 마이닝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고 그 때 상당히 많은 지식을 쌓음. 회사는 예전에 계량연구학을 RnD 차원에서 하다가 업무가 크게 바뀌면서, 학계로 가야겠다 생각했음. 마침 미국으로 유학을 결심한 것도 교수가 꿈이었으니 학교들을 알아보기 시작. 졸업하는 해에는 안됐지만 이듬해에 뉴저지공대 인포시스템 학과 조교수로 임용이 됨.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이렇게 조언을 주셨다고 한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말고 네 연구에 집중해라"
제일 힘들 때는 석사과정. 그 다음은 박사... 지금의 성과들은 모두 지도교수님 덕분이었는데 당시엔 본인이 큰 관심사가 아닌 교수님 관심사 분야로 논문을 많이 씀. 그러다보니 성과가 크게 안 나와서 쪼금 힘들었음. 석사 때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감이 들고 내가 하는게 맞는건가, 똑바로 가는건가. 끊임없이 좌절했음. 그런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이 많이 단단해지게 됨.
연구자로 살면서 얻은 교훈
1) 연구에 지름길은 없다
연구는 인풋이 있으면 반드시 아웃풋이 있기 마련. 사람을 대하는 직종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연구는 분명한 아웃풋이 있음. 우리가 빠지기 쉬운 유혹은, 연구에 지름길이 있다는 생각. 연구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묵묵히 정도를 걷는 수밖에 없음.
2) 시작했다면 끝을 내자
그리고 시작을 했으면 끝을 맺자. 시작을 해놓고 끝맺지 못한 경우가 특히 젊을 때 많았음. 이건 승산이 없다, 내 것이 아니다 등등의 이유로 또 다른 시작을 참 많이 했음. 그게 현명한 것 같아도 우매한 결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음. 연구에 국한돼서 얘기한다 한들, 반드시 페이퍼나 발표나 블로그 기재 등 결과물을 내야 함. 이런 것들이 선순환을 시작하는 마중물이 됨.
3)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실패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그렇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님. 실패 했다고 좌절하거나 거기서 슬럼프에 빠지지 말 것. 오늘보다는 내일 더 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연구자로서 성공할 수 있음. 끝을 냈다는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기.
4) "나는 연구자이다"를 잊지 말자
마치 앤드게임의 아이언맨이 "나는 아이언맨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음. 정체성의 문제. 내가 신진 연구자이든 중견 연구자이든 세계적인 석학이든 '나는 연구자'인 것. 이런 정체성이 흔들리면 어려움. 교수님 본인은 교육과 연구가 본분인데, 우리 학교에서는 연구 성과를 잘 내야 함. 교육은 있는 지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겠지만 연구는 끊임없이 페이퍼를 읽고 고민해야 함. 그렇지 않으면 연구가 진행될 수 없음. 근데 연륜이 쌓이면 다른 데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것 같음. 다양한 곳에서 오퍼도 받고..! 이럴 때 내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중심을 잡을 수 있음.
5) 타성에 빠지지 말자
이것도 위와 맥을 같이 하는 것.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기. 물론 쉽지 않음. 그러려면 각자의 삶이 다이나믹 해야 함. 끊임없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함. 페이퍼를 읽는 거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 역시 일련의 과정이 됨. 다이나믹하게 살다보면 타성에 빠질 시간도, 그럴 수도 없음. 내가 정체 돼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발걸음을 떼서 나아가면 됨.
성공하는 연구자가 되기 위한 12가지 제언
1) Role model을 찾아라
롤모델이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 베스트. 나이나 성별 등은 전혀 중요하지 않음. 내 연구의 모델이 되어줄 분을 찾는게 가장 중요함. 하지만 인간인지라 그 모델도 완벽할 수는 없음. 그런 점에 실망하지 말고 큰 방향성을 가지고 그 모델이 걷는 길을 보면 됨. 그러다보면 자기만의 스타일이 나옴. 아니 내 색깔을 만들어 가야 함.
2) 학문의 길을 가려는지 결정하자
설령 석사는 등 떠밀려서, 혹은 생계를 위해 들어왔다 하더라도 학위를 마치는 남은 기간 동안에는 나는 연구자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함. 왜냐. 그렇지 않으면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고 하지 않게 됨. 남들이 ~ 해서 어쩔 수 없었어 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절대 매진할 수 없고 절대 성공할 수 없음. 내가 끝까지 연구하려는 사람처럼 몰입해야 함. 학문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어야 함. 공부가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엔 이보다 힘든 일이 수도 없이 많음.
3) 연구를 즐겨라
연구를 하다보면 당연히 벽에 부딪힘. 헤맬 수도 있음. 거장들도 마찬가지임. 그럼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연구를 해나감. 왜? 즐겁기 때문. pleasure가 아니라 joyful. 나의 삶을 헌신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joyful 할 수 있음. 타인이 나의 연구에 inspired 되어 사회에 가치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의 연구는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 됨.
4) 일상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자
시간이 없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의 시간을 다시 돌아볼 것. 시간이 많이 남는다고 큰 일을 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음.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해냄. (으아 완전 공감..)
5) 연구 외 업무를 맡을 경우 성실하게 하자
연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 잡무를 맡는 일이 반드시 있음. 그럴 때 성실하게 해낼 것. 맡은 일을 성실히 하되 헌신할 필요는 없음. 주변에 평가자가 분명히 있음. 저 사람은 자기것만 챙기는 사람이야. 이렇게 됨. 어떻게든 그 일들을 내 연구와 결부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한 것. 가령 연구 제안서를 써보기나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리뷰를 해보는 것 등등!
6)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자
시작을 위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 (=나...) 논문을 쓸 때 가장 힘든 시기는 시작할 때임. 그냥 시작하는 절차를 생략하면 됨.
7) 표절을 주의하자
표절에 따른 손실비용이 매우 큼. 물론 주니어 때는 잘 몰라서 일수도 있지만 그럴 수록 점검을 많이 해야 함.
8) 연구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자
만약 언어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페이퍼를 먼저 읽어보고 질문을 사전에 작성해볼 것.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네트워킹을 하는 것임. 누구든 그런 연락을 받으면 좋아함. (물론 거장들은 회신이 잘 안올 수 있기 때문에 조교수나 포닥, 아니면 중견 연구자의 제자 등과 컨텍 하는게 좋을 수 있음) 학회를 가면 한국 학생은 한국인끼리만 모여있더라. 근데 중국이나 인도 학생들은 더듬더듬이라도 해외 연구자들과 소통을 함. 반드시 한 두 번 만이라도 질문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타겟을 잡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9) 걸작(傑作)이나 대작(大作)보다 습작(習作)에 충실하자
초심자들은 걸작, 대작을 쓰고 싶은 욕심이 많음. 하지만 습작에 충실하자. 본인도 아직 역작을 쓰지 못했다. 역작은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1저자로 쓰는 페이퍼 정도가 되지 않을까. 혹은 노벨상을 받을 업적을 쌓거나. 중간 레벨의 저널부터 시작해서 쓰다 보면 쓰는 방법을 배우고 길이 보이기 시작함. 옆에서 알려줘도 알 수 없음. 공동 저자로 써도 코끼리의 뒷다리 밖에 모르는 것. 내가 1저자가 돼서 써봐야 함. 좋은 페이퍼를 쓰는 눈이 점차 길러질 것.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SCI급 페이퍼를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들텐데 눈을 높이면 됨. 그들의 페이퍼를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면서 마인드를 답습하는 것. 창작을 위한 패턴을 연습해야 함.
10) 학회에 투고한 논문이 게재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교수님 본인도 많이 탈락함.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좋은 저널에서 받은 리뷰들을 받아들일 것. 그들은 어떤 인사이트를 가지고 코멘트를 다는지 바라보기.
11) 논문의 주제는 자기가 관심있고 잘 아는 분야에서 선택한다
지도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씀. "박사 논문으로 쓴 주제는 박사 받고 5년 간다(요즘은 3년 일수도 있음)." 박사 후 새로운 주제를 찾아야 함. 어느 도메인에서 더 임팩트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고, 어느 것이 내 관심 분야일지 모르니 크게 두 도메인을 잡아 둘 것.
12) 책상에 붙어있자
주변을 정리하는 등 내가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거기에 집중할 것. 10분 15분 투자해서는 논문을 쓸 수 없음.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몇 시간을 앉아있어야 함. 지구력과 집중력이 모두 있어야 함. 퇴고할 때는 리뷰어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볼 것.
좋은 페이퍼를 쓰는 법
- 페이퍼를 쓰려는 분야에 최상위 저널/컨퍼런스 논문을 정기적으로 검색하여 선정
- 선정된 논문들을 정독하고 연구문제/방법론/결과/인사이트/단점/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요약
- 연구주제를 선정/발전
- 해당 분야 전문가와 협업을 적극 모색 (지도교수 도움 필요)
- 선행 연구 및 연구에 필요한 정보 수집
- 수집되고 획득된 정보를 분석하고 평가
- 정보를 조직하고 논문에 필요한 내용 작성
- 참고자료 인용
물론 이 때 타켓 저널이 있어야 함. 논문이 부족하더라도 편집장의 철학이나 마인드에 따라 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저널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함.
QnA 타임
+ 고단했던 석사 과정
능력에 대한 한계에 좌절이 많았음. 이렇게 공부해서 겨우 학위를 마친 다음에 교수가 될 수 있을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두려움이 굉장히 컸음. 극복은 신앙의 힘이 컸고 (태평양 신자) 그 전에는 술담배를 많이 했음. 근데 악순환이 반복됨을 느꼈음. 그리고 유학 중에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면서 이를 꼭 끝내야겠다는 다짐을 계속 했음.
문정과에서는 A가 기본이었는데 전산과에서는 가장 잘 받은게 B+이었음. 성적이 바닥을 긴다는 것 자체가 정말 괴롭고 곤혹스러워서 내가 정말 이 복수 전공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많이 듦. 근데 회사에서 개발자가 하고 싶었는데 그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됐음. 당시엔 바닥을 기었지만 힘들면서 배웠던 내용들이 코딩을 하는 기초를 쌓아가는 초석이 되었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 기간이었지만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한 아이러닉한 반전.. 그냥 때리니까 맞긴 함. 다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했다는 것. 그게 석사과정을 이겨낼 수 있던 비결이었던 것 같음.
+ 주제를 정하고 논문의 구성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대한 조언
시작할 때는 무조건 지도 교수님의 연구에 참여하는게 필요. 박사과정이라 함은 내 연구 주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동일한 주제라 하더라도 방법론을 달리하거나 한계점을 건드리며 연구 주제를 구체화 해가는 것.
+타 분야의 관심을 통한 통찰력 향상
학문에도 여섯 단계가 있음. 내가 하고 있는 연구가 물리학의 어느 법칙과 연관 돼 있다면
+석박사를 이어서 하는 것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매우 다름. 미국은 회사에서 내가 끝내야 할 개발 분량이 끝나면 그 이후는 개인 시간. 개발이 아닌 이론, 사회과학 분야라면 직장을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공부하는게 매우 쉽지 않음. 퀄리티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 물론 실무와 연결돼 있으니 도움은 됨.
회사를 다니다가 (박사) 공부를 하겠다는 학생 100명 중 99명은 어려워함. 학업과 실무를 병행 하다보면 분명 선택의 시간이 옴. 배수의 진을 치고 학업에 몰입해야 할 수도 있음. 물론 연구를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그 땐 석사와 박사 사이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함.
음악가들은 은퇴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있습니다.
- 영화 '인턴' 대사 중에서
'공부하는 것 > 좋은 논문쓰는 방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스로에게 친절하길 - 허준이 교수의 명언 모음 (0) | 2022.09.06 |
---|---|
학계에 내딛는 첫 발, 네이처 기후변화지 - 그 비하인드 스토리 (0) | 2022.09.04 |
[레포트/논문 작성을 위한 이미지 제작법] #2 Illustrator (2) | 2021.05.04 |
[레포트/논문 작성을 위한 이미지 제작법] #1 Photoshop (0) | 2021.05.04 |
[Writing Science/과학적 글쓰기] Chap.06 The Funnel: Connecting O and C (4) | 2021.04.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