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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치열함이 있는 삶인가

by peregrina_ 202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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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네 삶에 치열함이 있느냐


어제 김 교수님과의 티타임에서 가장 뇌리에 남는 질문. 구체적으로는 현재 연구실 이 공간에 치열함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으나 내 삶 전반으로 확대해 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맞다. 평소에도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었고 이번에 포항으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더더욱 체감했던 부분을 교수님께서 잘 짚어주셨다. 석사 첫 학기 때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운 치열함을 가지고 살았는데, 학기가 쌓이면서 되려 마음이 느슨해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느슨함이 나태함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를 갉아 먹으면서까지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는 지혜를 터득한 것에 가깝다.

나를 비롯한 개개인의 마음 가짐은 변화무쌍 하더라도, 내가 경험한 이 공간은 대체로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언제나 서로가 서로의 경계를 지켜주었고 누구도 타인의 삶의 양식을 터치하지 않았다. 그게 스승과 제자의 관계일지라도 말이다. 그 덕분에 내가 대학원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됐다고도 생각하지만, 그 이후의 1년을 돌아봤을 땐 '과연 내 역량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시간이었는가' 반문하게 된다.

졸업 준비를 앞두고 현재까지의 결과물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많은 선배들과 박사님들이 '석사 학위를 취득할 자격'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높지 않으니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기준을 대지 않기를 조언주시곤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조언들을 수용함으로써 꽤 나아졌지만, 여전히 충족되지 않는 만족감들은 내가 석사 과정을 비단 졸업에만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과)학자적인 사고, 누구의 연구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 선배 연구자가 준 피드백을 곧장 반영하여 계속 해서 디스커션을 이어나갈 수 있는 추진력, 내가 연구하고 있는 내용만큼은 교수님께도 가르칠 수 있는 학문적 깊이 등이 인정 받을 수 있는 수준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감사히도 이번 출장에서 치열함이 깃들어 있는 그룹에 잠시 머물러 보면서 이 갈증을 해소할 불씨에 바람이 불어들었다. 물론 교수님도 말씀하셨듯 이 불씨를 키워가기 위해선 혼자 힘으로는 어려울 수 있다. 나와의 약속을 동료들과의 약속으로 넓혀간다는 마음으로 차차 시도해보자. 처음엔 시행착오도 겪겠지만 함께하면 더 많이 더 오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열의를 가진 동료들과 서서히 치열함을 만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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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어느 정도 갈무리 하고 홍제천으로 나섰다. 바람이 매서운 영하 10도의 날씨였지만 책상에 가만 앉아있기엔 타오르는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줄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패딩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나서니 생각보다 춥지 않고 상쾌했다.

교수님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앞으로 내가 연구적으로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색에 잠긴 채 걷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덧 한강 자락에 다다랐다.

두 눈에 한강의 야경이 담기는 순간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보다 더 깊은 감동이 몰려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큰 기대 없이 나선 길에서 마주한 선물 같은 만남이어서일까? 무거운 배낭도 필요 없는 순례길이 도처에 있음을 느꼈다.

초승달이 예뻤던 한강의 밤


오랜 만에 긴 여정을 다녀온 덕분에 어젯밤은 기나긴 숙면에 빠졌지만 ‘치열함이 있는 삶’을 위해 일요일인 오늘 늦게 나마 연구실에 출근했다. 연구를 하다가 조금 막히는 것들이 있어서 내일 마저 이어나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어제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도 있고 월요일에 기쁜 마음으로 결과를 보여 드리고 싶었다. ‘한 번만 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하고 이리저리 시도를 하니 마침내 원하는 그래프가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내가 더 구체화 할 수 있는 가설은 무엇인지, 내일의 숙제들을 정리하고서야 퇴근했다. 뿌듯한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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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과 달리 익숙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만큼 ‘내가 이 곳에 존재하는 이유’를 망각하지 않고 긴장감을 가져야겠다. 물론 잘 쉬어주는 장단도 필요하지만 학교에 있는 시간 만큼은 ‘치열함’을 유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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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를 다 쓰고 터치 패드로 스크롤을 내리다가 뒤로가기를 해버렸다.. 제목 빼고는 본문이 다 날아갔다.. 호호.. 다시 쓰려니 처음에 담아내고자 한 느낌이 잘 살아나지 않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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