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특정 성을 언급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지만 여성으로서 (매달) 겪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생각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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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던 청푸른 어제와 달리 오늘은 회색빛 하늘에서 보슬비가 내린다. 기온도 약간 떨어져 으슬거리기까지 하다. 서울의 날씨와 비슷하게 내 컨디션에도 저기압이 머무는 하루이다. 며칠 전 아이폰 건강앱이 알려준 시기에 맞춰 어김없이 주기가 시작 되었다. 아랫배와 허리에 통증이 자욱이 찾아오고 손발과 종아리가 붓기 시작했다.
통증을 덜어내기 위해서 잘 때는 보온 물주머니를 배에 올려두고, 출근 할 때도 물주머니를 챙겨다니는 편인데 오늘은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왔지 뭐람. 촉촉하게 비는 내리고 몸은 무겁고 배는 아픈데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마음이 시들해진 콩나물 시루가 되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리다 보니 오 신이시여, 예전에 피자집에서 받은 핫팩 하나를 보관 해둔게 생각났다. 이럴 때를 대비해 여름에도 부착용 핫팩을 종종 가지고 다니곤 하는데 어찌나 가뭄의 단비 같은지 모른다.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니 보건실 같은 공간에서 한 숨 자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집도 가깝고 연구실에도 취침 가능한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실과 수면실이 잘 갖춰져 있던 지난 첫 직장이 떠올랐다. 오늘 같은 날이나 밤잠을 푹 자지 못한 날엔 점심 시간을 빌어 그 공간들을 잘 애용하곤 했는데, 이후 다른 회사들을 경험하면서 그 때의 공간의 복지가 특별했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곤 지난 날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함께 일했던 대리님이 생각났다. 내가 속했던 팀에는 그 분을 제외하고 팀장님부터 차장, 대리님이 모두 남성이었다. 늘 점심 식사를 마치면 다른 분들은 먼저 나가 흡연을 하거나 회사로 돌아가셨고, 유일한 여자 대리님과 나는 식비 결제와 팀에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구비해서 회사로 돌아가곤 했다. 왜 잔일은 항상 그 대리님이 하시는걸까 의아했지만, 그거야 팀 내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순간은, 대리님이 종종 나를 데리고 약국에 들렀다가 회사로 복귀할 때였다.
대리님은 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회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약하게 여겨질 때가 많은데, 아픈 내색까지 비추면 사람들은 여성을 더 약한 존재로 봐"
약을 꿀꺽 삼키곤 아무렇지 않은 듯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하는 대리님을 보며 혼자서 입 안에 털어 넣어 삼켰을 시간들이 얼마일지 가늠 되지 않았다.
대리님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종종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꼭 박사까지 마쳐서 교수가 되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의 우려도 적고 전문성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공부)을 할 수 있는 업이 많지 않다는 이유였다. 종종 화장실에서 마주친 대리님은 그 곳에서 집안일도 적지 않게 처리하시곤 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은 사회에서 참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당시엔 20대 초반이라 크게 피부로 와닿기는 어려웠지만 해가 묵을 수록 그 때 느낀 감정이 조금씩 깊게 이해되곤 한다. 이젠 중고교 동창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기도 하니, 월경통 만으로도 많은 생각이 드는 나에게 만삭의 고통이란 어떤걸까 상상해보게 하지만 가히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만삭 뿐만 아니라 그냥 모든 임신 기간이 그렇겠지만은..)
그런 특별한 열 달의 시간을 제외하고도, 전세계 인구의 절반은 청(소)중장년이라는 수십 년의 시간 동안 매달 일주일씩 하복부가 아프다는 것이 가끔은 속상키도 하다. 주기 때 뿐만 아니라 그를 앞두고도 감정 기복이나 신체, 정신적 변화가 있으니 심한 경우 한 달 중 절반은 평범한 컨디션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여성들이 이를 그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평범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생각하니 가끔은 위대하단 생각이 든다. 특히 힐 신고 격한 춤을 춰야 하는 아이돌들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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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타이레올을 한 알 먹고 나니 서서히 통증이 개인다. 날씨도 참 사람을 늘어지게 만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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