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달 같은 3주가 지났다. 매일 잠을 자는 8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16시간을 연구실에서 살았으니 세 달 치의 시간을 보냈기도 했겠다.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싶지만 석사 졸업논문 예비심사를 한 달 반 앞둔 시점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으니 별 수 없었다. 특별히 그동안 연구하던 주제에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고 교수님과 나의 더 높은 목표가 아름답게 합을 이룬 결과 (^^;) 또다른 꼭지를 추가하게 됐다. 이를 결정하게 된 날도 기억에 선명한데, 그날 비로소 옥상에서 한 모금 빠는 담배의 맛이란 이런걸까 느꼈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자"
교수님과 마라톤 디스커션을 하다가 도무지 뾰족한 해답이 나오지 않자 교수님이 나를 옥상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곤 내 손에 칙촉 하나를 쥐어주셨다. 쿠키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자하니 머리를 식히러 나와서 무는 담배 한 개피가 이런 맛일까 싶었다. 옥상에서 돌아와 복도 벤치에 앉아서도 진솔한 속내를 서로 이어 나눠갔다. 그렇게 하여 폭염에 더해 극한 강수도 졸업논문 주제로 추가하기로 됐다.

그런데 두 현상의 메커니즘이 상이하다보니 처음에 강수를 볼 땐 참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 공부해야 할 게 얼마나 많았던지. 심사는 한 달 반이 남은 상황이었지만 실질적으로 3주 내에 연구를 마쳐야 이후 절차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참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결과가 기대하는 대로 나올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노다지가 있을지 아닐지 모른 채 일단 최대한 빠르게 채광을 해서 알아내야 한다는 불안감도 컸다.
인생사가 과연 늘 순탄한가. 이렇게 졸업 준비에만 전념해도 부족할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학기 초에 쏟아지는 연구실 팀장 업무로 일과 중에는 연구에 손도 못 댈 때가 부지기수였다. 저무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돌리고 연구를 시작할 때의 심경이란. 울컥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에 종종 휩싸였다.
하지만 이런 신세를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슬픔이 차오를 때마다 어느 인터뷰에서 차준환 피겨 선수가 했던 명대사를 보며 수시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나는 교수님이 오후 3시 전에 주문한 내역서를 익일 새벽에 로켓배송하는 쿠*맨이 된 채로 3주를 보냈다. 그 결과 교수님이 내 삶에 치열함이 있느냐고 물어보신 지난 2월 5일의 물음에, 꼬박 두 달이 지난 오늘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던 시간만큼 인생 전반에 걸쳐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간들이 '누가 시켜서' 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더 나아가고 싶은 '자발적인 마음'으로 채워져 있단 것이 감동이었다. 나는 배움의 걸음이 느리더라도 끝까지 해내는 힘과 어깨 너머로라도 다른이들의 장점을 나에게 적용하는 힘이 있는데, 지난 3주 간은 교수님으로부터 이 모든 시너지를 발휘 할 수 있는 양분과 믿음을 받았고 결국, 해냈다. 학계의 지식의 경계에서 한 발자국 나아간다는 것이 이런 성취감이 있는걸까.






내가 지향하는 '매일 1%씩 성장하는 삶'
그렇게 성장한 나를 매일 마주했다. 가슴 깊이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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