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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마음 읽기

[앤카드] 23/10/22(일) -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social person

by peregrina_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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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감정을 돌아본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있던 가장 큰 변화는 학교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것. 좋은 룸메를 만나서 잘 적응하고 지내고 있다. 벌써 이사 온 지도 딱 3주가 되었고 마침 거처를 옮긴 후 일주일 만에 생일을 맞아 같은 아파트, 이웃 아파트에 사는 학과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도 열었다. 미국에서 처음 맞이 하는 생일이 이렇게 많은 축하 속에서 행복할 지 상상도 못했는데 참 기쁜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었던 콜로라도 운전 면허증을 신청하러 갔고 (줄곧 날씨 좋다가 마침 그날만 영하권 날씨에 칼바람이 불어 자전거를 타는데 애를 먹었다) 음대에서 석사하는 친구에게 초대를 받아 오케스트라 공연도 보러 다녀왔다. 다행히(?) 한 이틀 정도 지나고서 다시 일교차가 20도 정도 되는 여름 날씨로 돌아와 따뜻한 가을을 누리고 있다. 가을 날씨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긴 하지만 이 동네에 대한 경험치 데이터 베이스가 부족한 관계로 그냥 좋은게 좋은거지 마인드로 좋은 햇살을 누리는 중이다.
 
며칠 전에는 학과에서 젊은 대기과학자들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어 학회 발표 연습 겸 포스터 세션에 참가를 했다. 생각보다 구두/포스터 발표자가 많지는 않아서 프로그램 북이 공개 됐을 때 어랏... 했지만 덕분에 더 많은 친구들과 밀접하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장점이 있었다. 사실 발표를 앞두고 오전/점심시간에 좀 긴장도 됐었는데 자연스럽게 시작 된 세션에 힘을 얻어 1시간 반을 혼신을 다해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쳤다. 아 참, 이 심포지엄은 교수님들은 참석하실 수가 없다. 학생들끼리 조금 편안한 분위기에서 발표하고 교류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이 이벤트의 큰 지향점 중 하나이다. 마치고 포트 콜린스에서 큰 브루어리 중 한 곳에서 피크닉 감성으로 피맥도 즐기고 참 좋았다. 연구실 동료들이 '나리는 정말 social person 같다'고 그러던데 이 본성은 가려지지 않나보다. 한국에서는 더 외향적이었는데 미국 와서는 줄어들었다고 하니 '아마 한국에선 99th percentile의 외향인이었다면 여기선 75th percentile 정도 되지 않을까' 하더라. 하하하. 아마 언어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워지면 이곳 저곳 누비며 친구들을 더 사귈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요 며칠 학과 학생회에서 신입생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를 포함하여 소셜 라이징을 해야 하는 자리가 몇몇 있었는데 갓 학부 마치고 석사로 들어온 20대 초반 원어민 친구들 속에 혼자 깍두기로 있을 때면 사실 마음이 편치는 않다. 속사포로 이야기 하는 말들을 다 캐치하고 반응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 그리고 이미 그 친구들은 수업도 같이 듣고 수많은 과제를 함께 해쳐 나가며 프렌드십이 꽤 두텁게 쌓인 상황이기에 친밀감 측면에서도 아직은 어색한 면이 많은게 사실이다. 물론 나는 나대로의 친한 친구들이 있고 매주 친구들이 제안하는 주말 이벤트들이 있음에도 사람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부러움을 느끼는 동물이지 않는가.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소속감 등을 더더욱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아직은 동기들과 다 가까운 관계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잘 지내오고 잘 해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 그리고 이런 감정에 대해서 생각보다 훨씬 무던해졌다고 느낀다. 아마도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나왔고, 내가 해야할 일들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그런 부차적인 것들에 덜 마음을 쓰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혼자 보내는 시간도 무척이나 중요해졌다. 지금까지는 매주 주말에 재미난 일들이 끊임없이 있었는데 사실 체력과 시간만 되면 다 참여하고 싶지만 외국어로 사교 활동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특히나 월요일에 수업 2개와 스터디 모임 1개, 개인 미팅 1개가 있어 주말에 숙제나 추가 연구가 필요한 일이 잦은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린다. 피곤하게 월요일을 시작하면 한 주가 리듬이 깨지는 느낌도 들고... 그래서 일요일에 모임에 초대를 받으면 고마운 마음 반, 걱정 반이 동시에 든다.
 
특히 이번 주말은 그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지난주 금요일에 심포지엄 발표 전후로 에너지가 고갈 된 상태에서 토요일 저녁에 (예상치 못하게) 상당히 긴 인도 공연을 보게 됐고, 사실 공연 보러가기 전에 집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컨디션도 약간 난조였었다. 호르몬 때문에 몸도 붓고 무겁던 참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일요일에 할로윈 준비 겸 pumpkin carving을 하자고 해서 호박을 미리 사두긴 했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못 갈 것 같다고 완곡히 거절을 했다. 그럼에도 친구들이 몸이 좀 괜찮아지면 늦게라도 데릴러 오겠다고 하여 미안함을 느끼며 몇 차례 사양을 하고 혼자 만의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 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마음 편히 놀 수 없는 상황이면 모임에 가도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이거이거 해야 하는데 지금 몇 시지?' 하면서 생각은 딴 데 가있고 좌불안석으로 있을 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차라리 가지 않는게 나은데 거절 또한 쉽지 않다. 이럴 때 보면 내향인에 누구보다 소심한 사람 같기도 하고 하하. 똑부러지게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 타인에 대한 시선에서 조금씩 더 자유로워질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담겨서 나온 오늘의 앤카드 감정/욕구 카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