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났다.
첫 학기에 비해서 시험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꽤 유하게 바꿨지만 필수과목 3개라는 점이 알게 모르게 긴장감을 주었던 것 같다. 최소한 재시험은 보면 안되겠다 싶어서.
2주 가량 미라클모닝을 하면서 수면시간이 평소 대비 한 3시간 정도가 줄어서인지, 지난주부터 구내염이 시험기간에 동반자로 함께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떡볶이도 친구가 먹자고 했을 때 거절할 정도로 맛보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다. 하루에 오로나민씨를 세 병씩 마시고도 낫지 않더니 오늘에서야 통증이 거진 사라졌다.
홀가분히 시험을 마치고 집에 오는길, 공기의 촉감이 어딘가 익숙했다. 근데 그 익숙함을 사월에 느낀다는 것에 낯섦을 느꼈다. 조금은 눅눅하고 몇 발자국을 더 걸으면 푹푹해질 것 같은 밀도감이 감도는 고요한 낮. 아직은 집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이 공기를 눌러내린다. 이 촉감은 6월에 시험을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마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4월 중순인데.. 마침 오늘 지구의 날이라 기분이 더 묘하네.
올해는 한 순간에 꽃이 피고 여름도 서둘러 찾아온 것 같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탔던 올해는 어제까지도 밤에 두툼한 후리스를 챙겨입었는데, 오늘은 집에 오자마자 안방 터줏대감이었던 난방텐트를 거두어 들였다. 지난 겨울을 따뜻하게 책임져준 아이인데 정리하고 나니 허전함이 스쳤다. 그래도 난 적응력이 빠른 편이니까, 곧장 넓어진 공간에 만족감을 느꼈다. 겨울 이불도 세탁을 하고, 행거에도 여름 옷들을 하나 둘 씩 꺼내 걸었다.
몇 시간 동안 공간의 계절을 바꾸고 나니 후덥지근한 날씨에 시원한 하이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다. 와인을 마시기엔 덥고, 맥주는 왜인지 강한 탄산감과 씁쓸함이 먼저 떠올랐다. 집 앞 이자카야에서 꼬치 한 줄에 하이볼 걸쳐 먹기 딱 좋은 날인데. 지금은 애정하던 광도 없어지고 그 곳에 함께 다니던 친구가 한국에 올 즘엔 여름의 중턱에 올라있겠다.
반팔에 셔츠를 걸쳐입고 위스키를 사러 산책을 나섰다. 갑자기 웃음이 나네. 대학교 엠티 때도 아니고 내가 위스키를 사러 먼 길을 나서다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퀘스트 하나를 완수한 것 같았다. 승기오빠한테 연희동에서 가까운 주류매장을 물어보니 오빠도 '너가 어쩐일'이냐며 신기해했다. 아냐. 위스키 진열대 앞에서 행복회로가 한참을 돌아간걸 보니, 앞으로 야금야금 위스키를 사모으게 될 것 같아 나...
오랜만의 신분증 검사에 이걸 좋아해야 하나, 입장 정리가 잘 안 됐지만 기분 좋게 위스키와 토닉워터를 품에 안고 집에 왔다. 반팔만 입고 돌아오는 길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잔을 냉동고에 잠시 얼려두고 교자만두를 노릇하게 익혔다. 시험기간 동안은 부엌에 드나들질 않아 후라이팬 잡는 것 조차 오랜만이네. 조만간 부엌에도 다시 내 온기를 불어 넣고 요리를 해야지. (이번주는 편의점 식사 밖에 기억에 없어...)
만두가 다 익었을 즈음 산토리와 토닉워터를 1:3 비율로 섞고 돌얼음을 퐁당퐁당 넣어 하이볼을 완성했다. 대망의 첫 한 모금을 입에 축였을 때... 내적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그래 내가 오늘 그토록 원하던 목넘김이 바로 이거였지! 비로소 진정한 여름 맞이를 이룬 기분이 든다..
시험이 끝나고 조금은 헛헛했던 시간이었지만, 휴식하며 에너지를 채우는 색다른 방법 하나를 알게 된 날이다. :) 사실 한 잔 더 하고 싶었지만 내일을 위해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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