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주말에 약속을 잡지 않고 오로지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편한 옷차림으로 온전히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꽤 익숙한 풍경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된 습관도 아니었다.
작년에 대학 생활을 매듭짓기 까지만 해도 주말주중 가리지 않고 약속이 빼곡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진 줄곧 어떠한 방식으로든 나의 주거 공간엔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 기숙사 1인실을 썼을 때도 복도만 나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온전히 홀로 보낼 수 있는 공간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푸욱- 숙면을 취하다보면 방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스르륵 눈이 떠진다. 토요일 오전 10시 반, 이 시간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모아둔 빨래감을 세탁기에 넣고 '동작' 버튼을 누르면서 나의 주말도 시작된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화장대를 질서있게 정돈하다보면 제자리에 놓아야 할 것들이 차곡차곡 눈에 쌓인다.
오늘은 유독 옷장과 부엌, 베란다에 계속 시선이 닿았다. 4월에는 시험기간이 겹치면서 집에서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았더니 나의 무관심이 공간에서 묻어 나오고 있었다. 미안함에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물로 개운하게 씻겨주었다. 간단한 것만 꺼내던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도 깊숙이 들여다보니 속이 많이 상해있었다. 혼자 지낼 수록 더 건강하게 챙겨 먹겠다는 지난 날의 의지를 마주하면서도, 의지를 넘어선 욕심들은 고스란히 노란 봉투에 눌러 담아야 했다. 그 의지의 일부에는 부모님의 시간과 정성도 많았는데, 어버이날인 오늘 죄송함이 배가 되어 고개가 떨구어졌다.
나는 비워내기를 잘 못하는 편이다. 이 마음은 부엌이라고 해서 쉽게 빗겨나갈 순 없었다. 어떤 재료의 가장 빛나는 시기가 지나더라도,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가치를 짜내면서 고이 모셔둔다. 그러다 손 쓸 수 없을 만큼 수명이 다할 때에야 품에서 놓아주곤 했다.
지난 일 년 간, 빛바랜 재료들을 숱하게 담아 버리고 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정'이라 부르고 싶은 나의 마음들이 다소 지나칠 경우, 사물 본연의 모습에 덕지덕지 붙어 그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비워야 할 것은 애꿎은 냉장고 속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비단 물건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절한 시기에 마음을 내려둘 줄 알아야 하듯이...
이렇게 한바탕 공간을 비워내다보면 이 과정에서 내 안은 더 건강한 기운들로 가득 채워짐을 느낀다. 내가 이런 시간을 꼬옥,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그래서 오늘 6시간 내리 청소만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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