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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임포스터 신드롬

by peregrina_ 202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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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복잡하고 밤마다 머리가 터질 듯이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이 감정을 혼자 이겨내 보겠다고 한 2-3주 동안 나를 지켜보다가, 때론 눈도 감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7월 들어선 달력의 숫자가 자체가 주는 심적 부담이 너무 커졌고, 과거의 내가 기대했던 내 모습과 괴리있는 현재에 번번이 실망하는 나날을 보냈다. 일상의 안정감은 방학을 맞은 지금보다 되려 학기 중에 더 컸는데 이번주 부로 상담도 종결되고 나니 마음이 약간 더 헤매는 걸지 모르겠다.

이 시간을 혼자 감내 하려 노력했지만 그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바람이 묻어 있었던 것 같다. 지난주, 선생님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과제를 내주셨다. '두 사람과 포옹하기'. 처음엔 당당히 외쳤다. "두 명이요? 에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미션 하나는 그 날 바로 어렵지 않게 도장을 꾸욱 찍었지만, 그 이상은 일주일이 흐르는 동안 차마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선생님.. 과제는 반은 못했어요...ㅎ"

선생님은 지난주에 의기양양 대답하던 모습은 어디갔냐고 물으시더니, 내 마음을 혼자 끌어안지 않고 사람들에게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고 한 학기 동안 머물렀던 둥지를 떠났다. 그리고 그 날 N을 만났다.

정말 오랜 만인데 마음이 참 편안했다. 솔직히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싶다가도 그에게도 나에게도 지난 1년을 그리워하진 않을 걸 느끼고는 ‘일 년 만이지만’ 따위의 인사는 부질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가 먼저 내게 안부를 물었다.

"요즘은 어때"
"음.. 10점 만점에 한 6점 정도?"
"전보다 낮아졌네"
"응, 그러게.. N은?"
"난 X? 근데 분산도 X야"

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었는데 N이 먼저 나의 달라진 평균에 더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임포스터 신드롬."

내 고민을 듣던 그는 대학원생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언젠가 한 번 그에게서 들어본 것 같은 증후군에 대해 언급했다. '자기 자신을 실력있는 사람들 사이에 운으로 들어온 사람으로 생각하고 실력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심리. 하지만 실제론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 내가 느끼고 있는 심리는 이 설명과 정말 똑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실력에 대한 전제는 난 아닌 것 같다. 전제가 성립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는 내가 이곳에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절대 '임포스터 신드롬'을 통해서 판단하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N은 연구자로서의 자아가 크게 위축된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본인의 깊은 고민이 녹아있는 지도를 건넸다. 작년에도 그랬지. 이 길의 초입에서 참 많이 망설이고 두려워하던 나에게 그가 먼저 헤쳐가면서 그린 약도를 전해줬었는데.. 1년 동안 서로가 걸어간 길을 덧붙이니 지도가 더욱 세밀해졌다.

"그리고 나리 너가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거야."

그러게, 맞는 말이다. 내가 성취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몸 담그고 있는 곳에서 만큼은 잘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다. 앞서가는 마음과 달리 내 몸은 종종 걸음을 하고 있어 괴로운거고. 다른 뛰어난 친구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도 '해볼 만큼 다 해봤다'고 당당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력해보진 않은 욕심쟁이. 쉽게 얻어 가려는 속셈인가 싶어 스스로를 자책도 하고, 연구 외에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사치로만 느껴졌다.

나에 대한 미움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던 즈음, N은 연구자로서의 내가 아닌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를 바라봐 주었다. 언제나처럼 그 앞에선 어떤 수식어도 소용없이 튕겨 나가고 본연의 나만 존재했다.

그 때 느꼈다. 내가 그동안 온전한 내 모습 '영점-나'를 많이 들여다보지 못해서 힘이 들었구나. '학생-나'가 다른 자아들을 다 짓궂게 억눌러버려서 소리내 외칠 용기가 부족했구나. 발걸음을 멈춰서선 말 없이 N을 안고 뚝-뚝-뚝, 눈물을 흘렸다.

나 너무 힘들었다고.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네가 더 버거웠을텐데 이런 내 마음을 너무 따스하게 다독여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N을 끌어 안았다.

아마도.. 나 우울감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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