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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100만원으로 얻은 것, 행복은 어디에

by peregrina_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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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번째 토플 시험을 봤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시험 본 후배랑 끝나고 나오며 연락을 했는데 본인은 이번 시험 글른 것 같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봐야겠다고 했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연달아 시험을 계속 본다고 뭐가 더 크게 달라질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100만원을 들이고 얻은게 회의감과 좌절감 뿐인가 싶어 참 허탈했다. 고환율 시기에 이제는 이 큰 돈도 돈 같지 않게 느껴질 지경이다.

오늘은 유독 아침부터 집에 오는 내내 마가 낀 것 같았다. 샤워기 헤드 받침대가 떨어져 깨지고, 갓 구운 크로플을 가방에 잠시 넣어뒀다가 온 물건에 메이플 시럽이 다 묻어 닦느라 애먹었고, 자전거 타다가 주유소 앞에 자전거 바퀴 폭 너비의 긴 홈에 끼여서 옆으로 쓰러지고, 또 뭐 있었더라,, 무튼 그냥 건강하게 집에 무사히 잘 도착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날이었다.

집에 와서 부모님이랑 통화하는데 아빠가 "늘 이렇게 열심히 살아줘서 자랑스럽고 고맙다. 그동안 노력한만큼 너에게 좋은 일이 분명 생길거야." 라고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울컥하던지. 시험을 잘 못 본 것도 그렇고 모든 일이 마음 같지 않으니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스스로에 대한 미움이 너무 커졌던 밤이다. 부모님께서 11월 중순에 같이 청와대 구경 가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갈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이고, 늘 이런 식으로 부모님과 재미난 추억을 많이 쌓지 못하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

이러는 와중에 12월에 결혼한다고 청첩장 전해준다는 중학교 친구 두 명의 연락을 받고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냥 좋아하는 가족들, 친구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일텐데. 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항상 지금의 행복을 참아내며 사는 것 같아서 더 슬펐다. (물론 넘어가야 할 관문이 있다면 당연히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도 맞지만, 오랜 시간 평균 이상의 감내를 해오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달에는 학회에서 오랜 만에 만난 다른 학교 후배가 "언니는 요즘 행복해?"라고 물어보길래 당황해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아니, 그래서 행복하냐구~"하고 집요하게 물어보더라. 끝내 자신있게 '그럼! 행복하지~'하고 답하지 못했다. 시험 전날도 또 다른 아끼는 동생이 갑자기 내가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통화를 마무리 하려는데 "언니,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기운 좀 내."라고 하더라. 흑. 나보다 더 언니같은 동생들..

뛰어난 사람들 가운데서 한없이 위축되는 요즘이라 그럴까. 내 자신에게 애증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거대하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삶에 별 빛을 섞으면서 한 걸음씩 가보면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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