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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가족의 사랑에 젖은 마음

by peregrina_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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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일찍, 가족들이 청와대를 구경하러 서울에 올라 왔다. 자다가 자취방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깼는데 엄마, 아빠, 언니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가족들은 곧바로 청와대에 가고 나는 집에 있다가 오후에 토플 시험을 보고 왔다.

시험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맛있는 저녁 하고 있으니 얼른 와서 같이 식사하자"는 말씀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복도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평소 시험날 같았으면 축 쳐진 어깨와 지친 몸으로 집에 와서 저녁은 대충 때웠을텐데 집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오늘 있었던 일, 서로의 하루를 물으며 저녁을 먹고 또 한창 수영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고. 마냥 좋았다. 아빠는 청와대의 정기를 받아온 것 같아 너무나 행복한 밤이라고 내내 말씀하셨다.

침대에 누워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지막히 내뱉었다. 엄마가 화들짝 놀라서 "그럼 안 돼~ 죽는 거잖아~"라고 답하셨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근데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지속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내일부터는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막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아빠는 주무시고) 엄마랑 새벽에 두어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엄마가 살아온 삶들을 듣고, 엄마는 참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대단하고 멋진 분이라고 느꼈다. 엄마의 이야기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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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새 일요일 아침이 밝았고, 부지런히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시는 엄마를 보고 감사한 마음, 존경심, 그리고 모처럼 중학생 시절처럼 어리광 피우고 싶은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들었다. 금새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아침을 먹고 부모님은 부지런히 본가로 내려가셨다. 떠나기 전에,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용돈을 주셨는데 아빠도 차를 타고 출발하다가 갑자기 멈춰서서는 뒷자석에서 지갑을 꺼내셨다. 아까 엄마한테 받았다고, 정말 괜찮다고 그랬는데도 아빠가 지금 줄 수 있는 사랑을 대신 표현하는 것 마냥 용돈을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용돈을 드려야 하는데, 부모님은 자주 보지 못하는 딸에게 그저 뭐라도 더 해주고 싶으신 것 같았다. 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금새 공허해진 집에서 허전함이 물 밀듯 밀려와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밖에 나왔다.

아주 오랜 만에 한강을 향해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길을 걷는 내내 엉엉 울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눈물샘이 햇볕에 뽀송하게 마를 때까지 걷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냇가에 오리도 보이고 윤슬이 아름다워서 멈춰 앉아 한동안 멍을 때렸다. 마음이 훨씬 개운해졌다.

 

홍제천 오리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외출 준비를 하다가, 유튜브에서 명상과 철학에 관련 된 영상들이 나와 계속 보다보니 오후가 금방 지나 있었다. 이제 진짜로 학교에 가서 자소서를 써야지 했는데 학교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니 감당할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육체적인 피곤이 아니라 그 왜, 울다 지쳐 잠드는, 정신적 휴식이 필요해서 오는 잠이었다.

결국 학교에서 자소서를 몇 자 수정하다가 다시 집에 돌아와서 편하게 마저 글을 쓰기로 했다. 근데 오늘은 왜이리 글을 이어가는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게다가 집안 곳곳에서 부모님의 도움 덕분에 한층 삶의 질이 올라간 흔적이 보이니 다시 또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오전에 산책 하면서 다 말렸다고 생각한 마음이 금새 흠뻑 젖어버렸다.

요즘 내가 잘 하는 부분 보다도 그렇지 않은 부분만 자주 마주하고, 또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허들을 향해 혼자 달려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보다. 이럴 때 일수록 혼자 삼키지 말고 한껏 쏟아내자. 아침 저녁으로 마음을 비우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은 것 같다. 그리고 이 또한 다 지나갈거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즐겁게 글을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