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후 처음으로 한국에 다녀왔다. 4주가 채 안 되는 기간 중 집에서 가족과 평화롭게 보내는 시간이 가장 좋았고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의 서울 방문은 나에게 상당히 고된 시간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당연히 컸지만 매일 평균 12-14시간을 밖에서 시간을 쪼개어 쉼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앵무새 처럼 지난 9개월의 유학 생활이 어땠는지 속사포로 쏟아내면서 점점 의욕도 체력도 빠르게 고갈되어 갔다. 급기야 모든 일정을 끝내고 본가로 돌아와서는 출국을 3일 앞두고 목감기 몸살에 걸려 약 먹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아픈 모습으로 미국에 보내면 가슴이 미어질 것 같으니 약 제대로 챙겨먹고 건강하게 가라는 엄마의 속상한 단호함에 샤워하면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어느 정도의 기간으로 누구와 시간을 보내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다. 아마도 최대 3주 정도, 그리고 서울에선 교수님, 연구실 사람들과 친한 동기들 정도만 가볍게 보고 오면 어떨지..
상당히 지친 몸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짐 싸기는 첫 출국을 할 때만큼 빡빡하지가 않아서 무게만 넘지 않도록 대충대충 캐리어에 던져 놓고 수하물을 부쳤다. 내심 공항에서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출국장에서 먼저 글썽이는 언니를 보면서 가족 모두 울고 말았다. 그래도 크게 달라진 것은 미국 유학길이 어떨지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작년 여름엔,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탑승구에 앉아서 엉엉 울었는데, 이번 출국길은 진짜 내 삶이 있고 또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커서 출국 심사를 마치고는 마음이 꽤 진정되었다. 언니는 캐나다 유학 생활을 할 때 처음 한국에 왔다 떠나는 날이 가슴 찢어지게 아프고 힘들어서 10년도 더 된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는데 다행이라고 느꼈다.
비행기에서 잘 자기 위해 라운지에서 맥주와 위스키를 몇 잔 마시고 들어갔는데 정말 푹- 잘 자고 일어나 보니 겨우 1시간 45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180도로 편히 누워갈 수 있는 메리트를 이렇게 흘려 보낸다고?! 추가 취침을 계속 노력했으나 직감적으로 시차 적응은 망했다고 느꼈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오전 11시 경에 도착하는데 한국 시간으론 새벽 3시... 시차를 맞추려면 늦어도 저녁 9시까지는 깨어있어야 할 텐데 겨우 2시간의 저녁 잠으로 30시간 정도를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피곤을 이기며 밤 11시까지 일상 생활을 잘 했으나 목감기 여파로 막힌 코와 컨디션 저하, 비행 후 기압차 등으로 귀가 막혀 정말 괴로운 하루를 보냈다. 하필 한국을 떠나자마자 이비인후과 질환으로 고생하니 병원에 쉽게 갈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와 나를 집어 삼켰다. 이쑤시개로 막힌 귀를 뚫을 수 있다면 열심히 찔러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한 쪽 귀에 청각 장애가 있으신 아빠가 그 간 십 수 년을 이런 답답함으로 사셨을 생각을 하니 너무 슬프고 아빠를 더 잘 이해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했다..) 그래도 약국에서 처방 받은 코/귀막힘 해소제를 먹고 17시간(!!)을 기절하고 일어나니 거짓말 처럼 귀가 말끔히 뚫려있어 감사했다.
시애틀에 있는 친구 집에서 2박 3일의 시간을 보내고 기나긴 여정 끝에 드디어 내 삶이 있는 포트 콜린스로 돌아왔다. 정말 평화로웠고 앙상했던 나무들이 한 달 새 푸르른 녹음으로 변한 모습이 꽤나 큰 변화였다. 연중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콜로라도지만 왜인지 예쁘게 구름 가득 낀 흐린 일요일의 모습과 촉촉한 비가 내리는 새벽의 월요일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이 도시가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랄까?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새벽 4시 50분 경, 새는 지저귀고 도로를 적시는 시원한 빗소리가 참 아름다웠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새벽의 고요함을 느끼며 (한국에서 많이 놀았던 만큼) 더 열심히 일에 집중하는 여름 방학을 보내고 싶다.
시차 적응인지 피로 누적인지 연구에 대한 걱정인지로 인한 수면 장애도 곧 나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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