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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일상 속 생각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 절실히 붙잡고 싶었던 평온한 일상

by peregrina_ 202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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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도.

갑자기 온몸에 열이 후끈 달아오르며 기침과 인후통이 수반됐다. 

 

 

 

 

지난 2주 간의 동선을 복기하고 증상을 지켜보니 '코로나에 걸렸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미용실-체육관-네트워킹 모임-과외생의 미스테리했던 체온계 고온 기록 등등.

언제 걸려도 수상할 것이 없는 동선이었다.

 

침착하게 유튜브와 각종 블로그를 검색하며 격리생활과 완치 후기를 모조리 섭렵했다.

 

침착을 유지하겠다곤 했지만 사람인 이상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친구들에겐 차마 애타는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언니에게 SOS를 청했다.

 

"언니, 아침에 일어나거든 바로 전화좀 주라..."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 잠결에 놀란 언니가 무슨 일이냐며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부터 터져나왔다.

 

"언니, 나 코로나에 걸린 것 같은데 확진 자체보다도 세상에 내가 알려지는게 너무 무섭다"

 

그랬다. 나는 이 정도 증상으로 그친다면야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재난문자를 통해 온 국민에게 나라는 사람, 내가 다닌 경로 등이 알려지는게 너무나 두려웠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죄의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검사를 받지 않고 어딘가 영영 숨고 싶었다.

 

언니는 내가 건강한 것이 가장 우선이라며 세상을 너무 의식하지 않을 것을 다독여주었다.

회사엔 "다음 날 재택근무를 하겠노라" 통보했고 이튿날 점심시간을 이용해 보건소에 다녀왔다.

 

 

 

 

 

쭈뼛쭈뼛, 선별진료소 앞을 어색하게 서성였다.

 

검사 대기자 명단에 이름 석자를 내려쓰자 간호선생님께서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셨다.

"어머~ 이름도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바짝 얼어붙은 내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시려는 것 같았다.

본인이 더 힘드실텐데, 진료자를 배려해주시는 그 마음이 참 따스했다.

 

 

"언니, 나 진료실 앞에 왔다"

"검사 잘 받고서 바로 연락해줘"

 

문진표를 작성하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는데 시간이 어찌나 짧은 듯 긴지.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이 이런걸까 생각하던 찰나 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은 영화에서만 보던 면회소 같았다.

의사선생님과는 투명벽으로 완전히 격리된 채, 마이크를 통해서 대화를 나눴고 문진표는 별도의 수납문을 통해 전달됐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검사 실시여부가 결정됐다.

 

검사실 역시 철저히 격리 구조였고 투명창에 매달린 고무장갑을 통해 검체 체취가 이뤄졌다.

엄청 아프대서 걱정했는데 목까지 기다란 면봉이 들어왔지만 하나도 아프진 않았다.

내 검체를 내 손으로 냉장고에 보관하고 나오는 길이 참 허망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자가격리 안내서를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로 위에선 투명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점심시간을 그렇게 보내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아무 입맛이 없었다.

배가 고프단 느낌도 전혀 없었다. 

묵묵히 오후 업무를 봤다.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아 힘겹게 6시 퇴근을 맞았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있는 나를 열심히 기운 북돋아주는 언니ㅠㅠ

 

 

 

나에게 남은 시간은 약 15시간.

 

유튜브를 다시 찾아봤다. 무얼 준비해야 할지. 병원마다 필요한 물품이 조금씩 달랐다.

여행을 갈 때처럼, 수첩에 체크리스트를 쭉 써내려갔다.

내일 아침에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챙기면 분명 빠질 것이 있을테니깐.

보건소 선생님께 여쭐 것까지 적어두고 마지막으로 집안 곳곳을 청소했다.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내지... 빨리 잠들어야겠다"

 

낮 동안에는 언니랑 계속 연락을 해왔지만 그곳은 이제 새벽. 언니가 잠들 시간이 왔다.

아침까지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또 유튜브를 봤다. 음성이 나올 듯 계속 양성이 나와 힘들어하는 분들.

7~8주의 싸움 끝에 완치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이겨낼 수 있을거라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렇게 뜯어보기 전까지는 코로나에 걸려도 단순히 경증을 앓다가 완치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건 증상의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이 그들에겐 당연하지 못했고

몇 주간 기약없는 싸움을 오로지 혼자서 이겨내야 했다.

 

난, 그런 상황에서 200% 우울증에 걸릴 사람이었다.

 

'오늘 쐬는 이 바깥 공기가 당분간 마지막이 되겠구나..'

그간 가벼이 행동했던 내 불찰을 깊이 반성하면서 잠에 들었다.

아침에 문자가 오길 희망하며...

 

 

부재중이 아닌 문자가 찍혀있던 핸드폰

 

"세상에!!!!" 문자가 와있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일 경우엔 문자로 알려주고 양성일 경우엔 대체로 전화가 온다고 했다.

역학조사와 격리안내 등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침에 잠시 2차 취침에 든 사이 보건소로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읽어보지 않아도 안도의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간밤에 아침에 전화를 받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렸는데. 믿기지 않았다.

 

 

 

 

 

 

 

신이 있다면, 나에게 라스트 찬스를 준 것만 같았다.

바깥 공기를 원하는 만큼 들이 마실 수 있는 기회.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언니도 너무 걱정돼 밤새 잠들지 못하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이 빠져나가, 우선은 살 것 같지만 대체 무엇이 열과 기침과 인후통을 가져왔는지 잘 모르겠다. 

오락가락하는 이 증세가 신경성인지, 호르몬 분비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증상이었다.

그래서 하루 세 차례씩 체온을 계속 재왔고 앞으로도 잴 것이고 당분간은 마스크를 벗는 자리는 지양하려고 한다.

 

 

우리 일상에선 보이지 않지만, 정말 많은 의료진들이 아직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단 걸 느꼈고.

우리나라만큼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과 복지를 갖춘 나라도 없구나. 참 감사했다.

나같은 젊은 친구들이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지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열심히 해야될 것 같다.

 

 

사랑의 형태가 달라진 이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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