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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지96

언택트 시대, 시각은 촉각을 대체 할 수 있을까 지난주, 애정하는 친구로부터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국이 예정된 것은 알고 있었으나 급히 나간다고 하니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남은 한 달 동안 당분간 떨어져있을 마음의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거늘... 엊그제 곧 만날 것처럼 헤어진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륙을 기다리며 기내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그가 한국에 머물던 지난 4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자가격리에서 해제된 날부터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우리 사이엔 수많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였고 하나의 구슬이 되어있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그건 슬픔이의 파란 구슬이었나 보다. 가만히 마음으로 그 구슬을 어루만지니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이내 목을 놓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이별은, 일평생 처음이었다.. 2020. 8. 23.
I'm 25 난 수수께끼 이십대의 정 가운데에 서있다. 큰 나무 줄기에 함께 있던 친구들은 제각각 저 마다의 가지로 갈라지고 잔가지를 뻗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떠한 꽃과 열매가 맺힐지는 그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 영양분을 흡수할 뿐이다. 그런 우리의 나뭇가지에 바람이 많이 스친다. 관성인지 고집인지 신중함인지 모를 '무거운' 무엇인가가 나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단단해서 부러지는 소나무보단 휘어지는 대나무가 되어가는 과정일까?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모르겠는 자아를 발견했다.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고 수많은 판도라의 상자가 놓여있는 것만 같다. 너무나 혼란스럽고 내면에는 격변의 파도가 거세게 부서진다. 25살이 그런 시기일까? 아니면 이제 시작인걸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청춘의 시기라고 생각했.. 2020. 8. 10.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 절실히 붙잡고 싶었던 평온한 일상 37.1도.갑자기 온몸에 열이 후끈 달아오르며 기침과 인후통이 수반됐다. 지난 2주 간의 동선을 복기하고 증상을 지켜보니 '코로나에 걸렸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미용실-체육관-네트워킹 모임-과외생의 미스테리했던 체온계 고온 기록 등등.언제 걸려도 수상할 것이 없는 동선이었다. 침착하게 유튜브와 각종 블로그를 검색하며 격리생활과 완치 후기를 모조리 섭렵했다. 침착을 유지하겠다곤 했지만 사람인 이상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친구들에겐 차마 애타는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언니에게 SOS를 청했다. "언니, 아침에 일어나거든 바로 전화좀 주라..." 현지 시간으로 새벽 5시, 잠결에 놀란 언니가 무슨 일이냐며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물부터 터져나왔다. ".. 2020. 7. 13.
물에 발 담그기를 좋아하는 마음, 똑 닮아있는 내 삶 유난히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을 좋아한다. 바다도, 온천도, 냇가도 모두. 문득, 이러한 마음이 내 삶의 발자취랑 무척 닮아있다고 느꼈다. 수온을 전혀 가늠치 못하고 발을 담갔을 때, 그 놀라움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금새 적응을 하는가 하면, 반사적으로 화들짝 빼고는 한동안 얼얼함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발을 담그기 위해선 마음의 준비가 크게 필요한 편이다. 신중하고, 천천히, 스며들어야 한다. 설령 수건이 없다 한들 개의치 않는다. 살랑이는 바람이 산뜻하게 말려주기도 하고 모래나 바위에 툭툭 털어내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물에 닿는 촉감으로 얻는 행복이 나에겐 더 소중하기 때문에. 20여 년을 살아온 나의 방식도 그러했다. 담그고 싶은 물을 보면 거리낌 없이 양말과 신을 벗어던졌다. 저마다의 체감 온도.. 2020. 7. 6.
배움 앞엔 왕도가 없다 - 엄마의 자전거 도전기 6월 27일, 우리 가족에게 역사적인 날 엄마가 일평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게 된 날이다. 그간 나는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배워야 하는거라며 엄마 나이엔 넘어지면 큰일난다고 방방뛰었다. 모처럼 근 두 달 만에 본가에 내려왔는데, 터미널에 마중 나온 엄마는 첫 인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점심 먹고 자전거 사러 가자" 엄마가 자전거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에 그러자고 했고 한 시간 가량 고민 끝에 산악자전거를 골랐다. 앞에 바구니 달린 예쁘장한 자전거가 아니라고 겁이 잔뜩 난 엄마를 한참을 달랜 것 같다. 이와중에 아빠는 배시시 웃으며 싸이클 자전거를 사겠다고 계산대로 가져오면서, 그렇게 역사의 일막이 시작됐다. 아빠엄마나, 세 가족이 해질녘 자전거를 끌고 강변으로 향했다. 엄마가 자전거랑 친해질 .. 2020. 6. 28.
건강함이 묻어 나오는 사람 - 내면의 채움 "나리님, 건강해보여서 좋네요. 언제 커피 한 잔 하러 와요." 2년 전 크루즈에서 만난 그(녀)로 부터 메세지가 왔다. 의례적인 인삿말이 된 "언제 밥 한 번 먹어요"가 아니라 근처에 지나갈 일이 있으면 커피 한 잔 하러 잠시 들리라고. 부담이 없었다. 모처럼 쉬는 날이기도 했고 그가 풍기는 건강한 아우라를 받고 싶었다. 그에게 잘 어울릴 듯한 꽃다발을 준비해서 작업실로 향했다. 대신 꽃 줄기는 철사로 묶지 않고 불필요한 포장은 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는 철사 아티스트지만, 버려질 철사를 선물하고 싶지 않았다.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꽤나 놀라웠다. 그간 환경문제를 예술로 풀어내는 작가들을 보긴 했지만, 작업 공간에 방문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공간 전체에서 그의 세계관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했다. 미.. 2020.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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